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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대통령은 세상을 몇 도나 바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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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0-08 22:03:21 수정 : 2015-10-09 0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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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해산하고 전교조 불법화에 이어
국사 교과서도 국정화… 이념전쟁 가치 있지만
박 대통령 성공하려면 수단과 목표 구분해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명석했지만 이념투쟁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정치적 술책이나 자신의 언변에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그는 “불법과 반칙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며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립학교법 개정, 대연정 카드를 내보였다. 그러나 ‘국보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기 위해’ 기무사령관을 관저로 몰래 불러 ‘총대를 메 달라’는 등 곳곳에 장치를 설치해놓고, 정권 초기 다수당의 힘을 빌려 밀어붙였지만 실패했다. 사립학교법 개정과 대연정 추진도 같은 신세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몽상가처럼 독선적이고 어리석게 비쳤다. 아무리 비전이 있어도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정당성을 얻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념전쟁에서 두 가지를 해냈다. 통합진보당 해산과 전교조 불법화는 박근혜 정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사법부의 판결을 통한 것이지만 박 대통령의 신념이 워낙 강했기에 가능했다. 전교조 불법화에 대해선 여당 의원도 “너무 성급하다”고 했고,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해 중도적 사람들이 ‘사상적 편향’이라는 우려를 표시했지만 굽히지 않았다. 지금 정국을 뒤흔드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의 신념이 결정적이다.

백영철 논설위원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이후나 똑같은 게 있다. 자신의 신념을 굽힌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번 국사 국정화에서도 확인된다. 강경보수 쪽에선 황우여 장관을 못마땅해한다. 대통령을 대신해 투사처럼 싸워야 하는데 신념 부족으로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김상률 청와대 교문수석에겐 아예 “흐리멍텅한 가치관을 가진 알랑쇠”라며 비난일색이다. 강경보수 진영 사람들이 박 대통령에 열광하는 이유는 하나다. 애국심에서 서로 잘 통한다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은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위해 독재회귀라고 비난받아도, 야당 반대로 정국이 막히고 현안인 노동개혁이 지체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박 대통령의 이런 점은 미국 도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닮았다. 레이건은 무식했지만 미국 역사에서 누구보다 크게 성공한 대통령이다. 소련과 이데올로기 경쟁에서 승리해 미국을 유일한 슈퍼파워 국가로 올려놓았다. 레이건은 정치술책보다는 신념에 더 강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레이건은 소련을 거침없이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다. 흑백논리로 세상을 보고 단순명쾌하게 원칙을 지켰다. 박 대통령은 레이건 못지않다. 말이 간명하고 논리도 단순하다. 신념의 실천에 투철한 의지를 갖고 있다. 잔머리 굴리는 스타일도 아니다. 박 대통령에겐 고무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레이건의 성공은 이념전쟁의 승리로만 이뤄진 게 아니다. 미국과 세계의 안보를 지키는 데 눈부신 실적을 쌓았고 경제적 성장이라는 달콤한 열매까지 안겨주었다. 박 대통령이 레이건의 길로 가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나라를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그래야 한다. 하지만 수단과 목표의 혼선이 있어선 안 된다. 목표는 다른 것을 희생하더라도 반드시 이뤄야 하는 귀중한 그 무엇이다. 나라를 더 안전하게 하고, 국민을 더 풍족하게 하는 것 이상의 목표는 없다. 외교와 안보, 경제에서 성공하지 못하면서 이념전쟁에서 승리해봤자 모래를 한 움큼 손아귀에 쥔 것처럼 공허해진다. 국사 국정화로 국민 통합의 길이 더 멀어지면 이 또한 이념전쟁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빛과 그림자를 정확히 봐야 한다.

박 대통령은 국사 국정화에 대해 “국가관의 확립과 균형 있는 역사인식을 위해서”라고 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지만 무슨 목표 달성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니 답답하다. 더구나 정권이 바뀌어도 불변인 지속가능한 의제가 아니다. 누가 그랬다. “대통령은 세상을 다 바꿀 것 같지만 5도 정도 움직일 뿐이다.” 소련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레이건도 왼쪽으로 치우친 세상을 오른쪽으로 조금 움직이는 데 불과했다.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에서 세상을 옮겼다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을 되풀이한다. 대부분 8년씩 재임하는 미국이 그렇다면 5년 단임제인 한국의 시계는 더 빨리 돌아간다.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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