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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같은 인생… “목소리 다할 때까지 노래 부를 것”

입력 : 2015-10-11 21:29:30 수정 : 2015-10-12 0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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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공연 갖는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주역 멕시코 테너 헤수스 레온 “200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레스토랑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른 밤, 제 인생이 180도 바뀌었어요.”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에서 주역을 맡은 테너 헤수스 레온(39)의 인생은 오페라만큼이나 극적이다. 그는 멕시코 서북부 에르모시오에서 자랐다. 인구 100만명으로 오페라 극장 하나 없는 도시였다. 10대 시절 밴드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했다. 1994년 전국경연대회에서 3등에 올랐다. 이곳에서 ‘인생의 스승’ 헤수스 리를 만났다. 헤수스 리는 그에게 ‘당장 대중음악을 그만두라’고 했다. 2년간 스승에게 성악을 배웠다. 이어 헤수스 리가 소노라대학에 신설한 음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3년 뒤 슬픈 소식이 날아들었다.

테너 헤수스 레온이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에서 ‘진주조개잡이’의 한 장면을 맞춰보고 있다.
남제현 기자
“선생님이 화재 사고로 숨졌어요. 그 후 학교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제게 모든 것이었으니까요. 아버지와 같았습니다.”

대학을 떠난 그는 4년간 결혼 피로연에서 노래하며 생계를 꾸렸다. 일을 마치면 TV로 유럽의 클래식 공연을 지켜봤다. ‘나도 저렇게 부를 수 있는데’ 생각했다. 이대로 멕시코에 눌러앉고 싶지 않았다. ‘운명의 밤’은 우연히 찾아왔다. 2004년 일주일 일정으로 미국 디즈니랜드로 여행 갔다. 한 레스토랑에서 재미 삼아 오페라 아리아들을 불렀다. 그 밤 이 식당에는 세계적 팝페라 가수 조시 그로번을 가르친 음악가를 비롯해 오페라계 유명 인사들이 자리해 있었다.

“제게 ‘직업이 뭐냐’고 묻더라고요. ‘멕시코에 살면서 결혼식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했죠. 그들이 제게 ‘멕시코로 돌아갈 필요 없다’고 말했어요.”

‘흙속의 진주’는 20대 후반에 이렇게 발견됐다. 그는 장학금을 받고 미국 UCLA 오페라 스튜디오에서 공부했다. 이듬해 보스턴 오페라 연구소로 옮겼다. 2006년 게오르그 솔티 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유럽 무대로 진출했다.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8년쯤이에요. 영국 런던 로열 앨버트홀에서 로열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투란도트’의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를 불렀어요. 성공적이었죠.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 여러 곳에서 섭외가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멕시코에서 유럽 무대로 나온 그는 타고난 미성과 물 흐르는 듯한 기교로 점점 많은 극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가 15∼1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관객과 처음 인사한다. 비제의 ‘진주조개잡이’에서 나디르를 맡았다. 국내에서 이 작품을 오페라로 올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진주조개잡이’는 고대 실론섬(스리랑카)을 배경으로 어부 나디르, 주르가와 무녀 레일라의 삼각관계를 그렸다. 레온은 나디르에 대해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도 태생적으로 목소리가 안 따라주면 못하는 어려운 역”이라며 “높은 음이 많고, 테너 레퍼토리 중 가장 어려운 아리아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와 이 작품의 인연은 각별하다. 지난해 3월 오스트리아에서 ‘돈 파스콸레’에 출연 중이던 그에게 급한 연락이 왔다. 일주일간 ‘진주조개잡이’ 연습 파트너로 일했던 이탈리아 파르마 레조 극장이었다. 섭외된 테너가 아프다며 대타로 서 달라고 했다. 부랴부랴 가보니 남은 리허설 시간은 고작 30분. 주인공 소프라노와는 음 한 번 못 맞추고 무대에서 대면했다. 이 공연의 성공으로, 이탈리아 모데나 루치아노 파바로티극장에서 같은 역이 들어왔다. ‘파바로티의 심장과 음색을 지닌 가수’라는 평을 받았다. 내년에는 피렌체 오페라과 이 작품을 한다.

그는 최근 오페라계의 한 축을 이룬 남미 테너의 계보를 잇고 있다. 최근 내한한 라몬 바르가스를 비롯해 플라시도 도밍고, 마르첼로 알바레스, 호세 쿠라, 롤란도 비야손 등 남미 성악가의 활약은 눈부시다. 그는 남미 성악가가 호평받는 원동력에 대해 “멕시코에서는 주말마다 가족이 모여 맥주와 음식을 먹으며 기타 치고 노래한다”며 “거리에서 기타, 트럼펫을 연주하는 ‘마리아치(Mariachi)’라는 문화도 있다”고 소개했다. 언어가 이탈리아어와 유사한 것도 한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남미에는 마초 문화가 있지만 한편으로 테너 비야손의 노래에 웃고 울고 한다”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고 전했다. 그는 남미 못지않게 한국 성악가에게도 깊은 인상을 받는다고 했다.

“브레겐츠에서 한명원씨, 피렌체 시립극장에서 줄리안 김(김주택)과 만났어요. 목소리가 정말 대단하더군요. 믿기지 않았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공병우씨와 하는데, 역시 대단하더라고요. 한국인의 목소리에는 특별한 점이 있어요. 성량이 크고, 목소리를 역에 맞게 잘 통제해요.”

동화적 성공을 이룬 그는 자신에 대해 “정말 운이 좋았다”며 “노래하는 순간 내가 살아있다 느끼고, 그 순간은 누구도 뺏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꿈이 있는지 묻자 주저 없이 “예스”라고 말한 뒤 “목소리가 다할 때까지 노래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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