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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중국을보고세상을읽다] 굴기와 여성파워

관련이슈 김진호의 중국을 보고 세상을 읽다

입력 : 2015-10-12 22:25:57 수정 : 2015-10-12 22: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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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의 지도자인 쑨중산(孫中山)은 1915년 상하이 재벌 쑹자수(宋嘉樹)의 차녀 쑹칭링(宋慶齡)과 결혼했고, 쑹칭링의 동생인 쑹메이링(宋美齡)은 1927년 장제스(蔣介石)와 결혼했다. 쑹메이링은 협상과 외교력이 탁월했는데, 1943년 미국의회 연설로 미국 지원도 얻어냈다. 장제스 사후 미국에서 거주하던 그녀는 1995년 98세의 나이로 미국의회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다시 연설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서방 지도자들은 쑹메이링을 통해 중국 여성의 이미지를 상상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쑹메이링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송가왕조’(宋家王朝)라는 영화에서 잘 묘사됐는데, 쑹메이링은 2003년 106세로 미국에서 서거했고, 사회주의자로 중국에서 부주석을 지낸 송칭링은 89세로 1981년 베이징에서 세상을 떠났다. 

김진호 단국대 교수·국제관계학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국가주석이자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던 마오쩌둥(毛澤東)은 세 번이나 결혼했지만, 1938년 장칭(江靑)과 결혼했기에 그녀가 제1부인 역할을 했다. 장칭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려 했지만, 마오쩌둥 사후 ‘4인방’으로 몰리면서 수감생활 끝에 1991년 자살했다. 장칭은 마오쩌둥을 등에 업고 정치야욕을 실현하려 했다고 한다.

화궈펑(華國鋒)은 중국공산당 중앙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및 국무원 총리 자격으로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지도자 역할을 했는데, 그의 부인인 한즈쥔(韓芝俊)은 중화전국부녀연합회 집행위원장을 맡았지만 드러난 활동은 없었다. 개혁·개방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1977년 복권돼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활동하다 1981년 군사위 주석에 올랐다. 그의 아내인 줘린(卓琳)은 베이징대 출신으로 내조에 힘썼으며, 덩샤오핑과 같이 1978∼79년 일본과 미국을 방문한 적만 있다. 1982부터 1987년까지 중국공산당 총서기였던 후야오방(胡耀邦)의 부인 리자오(李昭)도 특별한 활동이 없었다. 그리고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중앙공산당 총서기였던 자오쯔양(趙紫陽)의 아내 량보치(梁伯琪)도 마찬가지였다.

1989년부터 중앙공산당 총서기와 중앙군위원회 주석, 1993년부터 국가주석도 맡았던 장쩌민(江澤民)의 아내 왕예핑(王冶平)도 해외방문에만 동행할 정도였고, 2002년 말 중앙공산당 총서기, 2003년초 국가주석, 2004년에 중앙군사위 주석을 맡았던 후진타오(胡錦濤)의 아내 류융칭(劉永淸)도 특별한 활동 없이 해외방문에만 동행했다.

2012년 당·군·정의 수장으로 취임한 시진핑(習近平)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은 시진핑보다 먼저 유명해진 국민가수이자 현역 군인이다. 현재 장성으로 해방군예술대학의 총장이자 예술인인 그녀의 활동은 중국 제1부인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 놓고 있다. 그녀의 활동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미국 언론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 단정하며 화려한 모습의 펑리위안이 지난 9월 26일 유엔 유네스코 여성아동교육회의에서 자신감에 찬 발언을 했다. 중국의 국력과 같이 중국 여성의 이미지도 굴기(?起)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진호 단국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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