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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도 훨씬 지난 이야기다.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겪은 일이다. 마침 대공원 소장과 친분이 있는 터라 후배들과 함께 동물원을 찾았다. 소장은 우리 일행을 대접한답시고 새끼 호랑이를 구경시켜 주었다. 어미 곁을 떠나 우유를 먹고 있는 모습은 깜찍이 그 자체였다. 다들 그 녀석을 안고 포즈를 취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로 그때 ‘사건’이 터졌다. 한 후배가 저쪽으로 후다닥 달아나기 시작했다. 모두 깜짝 놀라 연유를 물었다. “새끼 호랑이가 너무 무서워요. 고양이의 눈만 마주쳐도 사지가 떨리는 걸요.” 그 후배에게 걱정 말고 한번 안아 보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의 발은 이미 땅바닥에 붙은 뒤였다. 새끼 호랑이의 눈을 보는 순간, 한 마리의 쥐가 되고 말았다.

생뚱맞게 후배 생각을 떠올린 것은 요즘 온라인을 후끈 달군 ‘캣맘’ 사건 때문이다. 지난주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 화단 앞에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던 50대 여성이 벽돌에 맞아 숨지면서 사회 이슈로 떠오른 사건이다. 길고양이에 극도의 혐오증을 가진 사람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단서를 찾지 못한 경찰은 두둑한 현상금을 내걸고 제보 전단을 뿌렸다. 이례적으로 범행에 쓰인 ‘흉기’ 사진까지 실었다. 졸지에 벽돌이 범인 몽타주를 대신한 꼴이다.

인터넷에는 캣맘 살해범을 꼭 처벌해 달라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캣맘 혐오증 역시 만만치 않다. ‘캣맘 엿 먹이는 방법’이 주요 포털사이트를 도배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료를 주는 대야를 매일 가져가버리면 밥을 못 줄 거다”, “캣맘이 시끄러운 소리를 듣도록 캣맘 집 앞에 사료를 뿌려라”는 따위의 글이 홍수를 이룬다. 심지어 “참치 캔에 차 부동액을 넣어두라”는 섬뜩한 내용도 올라온다. 반려동물 전성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늘 또한 이토록 짙다.

고양이에 대한 호불호는 각자 다를 수 있다. 심야에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라면 선뜻 호감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 지구라는 별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함께 사용하는 공유물이라고 말이다.

캣맘 혐오증은 애완 본능의 어두운 뒷면이다. 내 것만 귀히 여기고 불편함을 혐오하는 이기심의 발로다. 경찰의 수배전단에 올릴 사진은 애꿎은 벽돌이 아니라 바로 이런 혐오증이 아닐까.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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