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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훈민정음 해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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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0-13 20:40:40 수정 : 2015-10-13 20:4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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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숨지면 시호를 붙인다. 끝머리에는 붙는 호칭이 똑같다. ‘대왕(大王)’. 시호를 대왕이라고 한다고 모두 대왕인 것은 아니다.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세종은 대왕이다. 그의 동상이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것은 2009년이다. 왜 그리 늦었을까.

훈민정음 반포 11년 전의 일이다. 세종은 원육전(元六典)을 이두로 만들고자 했다. 원육전은 경제원육전이라고도 한다. 다듬는 과정에서 한문 법전이 돼 버렸다. 이두로 만들고자 한 것은 글을 잘 모르는 아전을 위해서였다. 이조판서 허조가 반대했다. “간특한 백성이 율문을 알면 죄의 대소를 알아 두려워하고 꺼리는 바가 없어지고 법을 농간하는 무리가 생길까 두렵사옵니다.” 세종 왈, “그렇다면 죄인지도 모르고 죄를 범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는 말이더냐.” 이두 원육전은 결국 다시 만들어졌다.

훈민정음 창제 때에도 소동이 있었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가 상소를 올렸다. 내용이 고약했다. “이두를 시행한 지 수천 년 동안 방애된 일이 없고, 폐단이 없는데 어찌 야비하고 상스러운 무익한 글자를 만드는 것이옵니까.” 모화(慕華)에 젖은 말도 쏟아냈다. “이적(夷狄)이 화하(華夏)를 변하게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사옵니다.” 화난 세종, “네가 운서(韻書)를 알면 얼마나 아느냐. 내가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바로잡을 것이냐.” 마침내 반포된 훈민정음 해례본 첫머리의 글은 이렇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아니할새, 이런 까닭에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할 이 많으니라….”

백성 아끼는 마음이 넘쳐난다. 세종을 “대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백성 아끼는 마음 때문이다. 훈민정음은 이후 민족혼을 잇는 글자가 됐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두고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배모씨가 말했다. “1000억원을 주면 내놓겠다.” 원래 주인이라는 골동품업자 조모씨, “배씨가 다른 고서적을 사면서 상주본을 몰래 끼워넣어 훔쳐갔다”고 주장해 법정다툼까지 벌어졌다. 배씨의 집이 불타 상주본 일부가 훼손됐다고도 한다.

참으로 낯부끄러운 일 아닌가. 허조가 말한 ‘간특한’ 일이 580여년 뒤에 벌어지는 것인가. 세종대왕은 이런 일이 있을 줄 짐작이나 했을까. 훈민정음 해례본이 국보인 것은 ‘대왕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국민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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