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여행] 우뚝 솟은 '노예 감시탑'… 설탕의 달콤함 속 숨겨진 아픔

관련이슈 강주미 세 자매의 께딸, 쿠바!

입력 : 2015-11-13 10:00:00 수정 : 2015-11-13 10:00:0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강주미 세 자매의 께딸, 쿠바!] <9> 거대한 사탕수수밭 '잉헤니오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노예들을 감시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탑이 삭막하다.
‘트리니다드(Trinidad)’는 쿠바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산 중턱에서부터 작은 집들이 구불구불하게 줄지어 마을을 이룬다. 

트리니다드 아침은 활기차게 시작한다. 아침에만 열리는 시장에서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서 작은 언니는 일찍 나섰다. 한 군데서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시장을 몇 군데 들러서 사 왔다. 시장이라고 하지만 몇 명이 나와서 길거리에서 파는 상인이 전부다. 아침을 준비하는 작은 언니는 분주하게 돌아다녀서 근사한 식사를 만들어냈다.
잉헤니오스로 가는 증기기관차.

밥을 먹고 일찍 나선 곳은 9시에 출발하는 기차역이다. ‘잉헤니오스’를 가는 증기기관차다. 그 기차역에는 일반 버스같이 생긴 전차가 가까운 마을 사이를 운행하고, 관광객을 위해서 증기기관차가 다닌다. 

일찍 도착해서 표를 미리 구매하려고 했는데, 9시부터 판단다. 기다려서 표를 제일 먼저 사고 기차역에서 기다렸다. 
증기기관차가 정차해 있다.

기차역도 작고 대기실도 작다. 그 사이로 소달구지가 지나간다. 눈을 의심해도 실제 벌어지는 일이다. 

기차역은 마을 외곽에 있어서 더욱 시골처럼 느껴졌다. 
작은 기차역은 아담하고 예쁘다.

 경적 소리와 함께 도착한 두 칸짜리 기차는 하얀 연기를 내뿜으면서 출발을 알렸다. 이 기차를 타는 사람은 관광객과 기차에서 일하는 쿠바인뿐이다. 

기차 맨 뒤 계단에 앉아 밖을 보면서 바람을 맞고 있을 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역무원이 왔다.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기차가 잠깐 멈출 때다. 내려서 선로를 직접 손으로 바꾸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한국을 궁금해하고, 쿠바와 비슷한 점을 찾으면 재밌어 한다. 

작은 언니는 한 시간이 넘도록 느리게 달리는 기차에서 처음에는 신나서 바깥 풍경 구경에 심취했지만, 곧 잠이 들었다. 아침에 시장을 돌아다닌 탓도 있었을 것이다. 큰언니와 함께 앞칸으로 갔다. 

기차는 총 세 칸으로 구성됐다. 맨 앞 칸은 작은 기관실이고, 둘째 칸은 음료를 파는 작은 바와 함께 테이블이 몇개 있고, 셋째 칸은 객실로 반듯한 나무의자가 스무 개 정도 있다. 큰언니랑 바에 가서 음료수를 한 잔 하고 있는데, 나와 친해진 역무원이 또 왔다. 우리를 기관실로 안내했고, 증기기관차를 몰고 있는 기관사 자리에 앉게 해줬다. 
증기기관차를 운전하는 아저씨는 잠깐 자리를 내주었다.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를 잡아당겨 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빠앙’ 하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기관사가 괜찮다면서 또 해보라고 해서, 계속 기적 소리를 내면서 달렸다. 아마도 객실 칸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했겠지만, 우리는 신나게 기차를 몰았다.
 
푸른 들판을 지나 산을 넘어갈 때 하나도 놓치지 말고 보라고 기차는 느리게 간다.

 기차는 협곡을 지나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먼 곳을 가는 것처럼 달렸다. 실제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우리에게 경치를 감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 느리게 가는 듯했다. 그렇게 느리게 가던 기차가 갑자기 완전히 멈췄다. 소 몇 마리가 기찻길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소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주는 그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기찻길 옆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하루에 한 번 지나가는 이 기차를 매일 볼 텐데, 꼬마들은 그 시간에 나와서 손을 흔들어준다.
소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기다려준다.

잉헤니오스는 거대한 사탕수수밭이다. 그 사탕수수밭에서 노역하던 사람들을 감시하는 탑을 세워서 부를 누렸던 배부른 인간이 살던 집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욕심으로 가득했던 그 사람은 한 명이라도 일을 게을리하지 못하게 하고, 도망가지도 못하게 감시하기 위해서 그 높은 탑을 만들었다. 자신도 올라가기 힘들었을 그 탑에 올라가서 사방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창을 냈다. 그래서 설탕은 달콤함에 숨겨진 슬픔과 아픔이 있다. 지금도 중요하게 쓰이는 설탕은 이중적이다. 없어서는 안 되는 재료지만, 건강을 빌미 삼아 수치를 만들어 놓고 달콤한 설탕에 쓴 의미를 부여한다. 이 넓은 들판에서 감옥 창살처럼 뻗은 사탕수수가 그 당시 아픔을 보여준다. 
이 넓은 들판은 이곳에서 자유 없이 일만 했던 이들 생각에 아름답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잉헤니오스를 보고 나서 다시 기차에 올라 농장에 들렀다. 그 농장에서 점심을 먹을 시간을 준다. 농장을 구경하다가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우리는 기뻐했다. 그것은 어디를 가나 있어야 할 닭 때문이었다. 

트리니다드에 물자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서 닭고기를 살 수 없었다. 작은 언니는 며칠 동안 닭고기를 사기 위해서 동네를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엔 사지 못했다. 그렇게 닭 구하기가 힘들었는데, 이 농장에 뛰어노는 닭을 봤으니 기쁠 만했다. 

농장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당연히 팔 수 있단다. 하지만 닭을 잡아서 손질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 기차 시간 안에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아쉬움에 돌아서면서도 마지막으로 기차에서 친해진 아저씨에게 부탁을 해봤다. 그는 매일 이 기차를 타고 이 농장에 오기 때문에 얘기를 해봤다. 그는 흔쾌히 손질된 소중한 닭을 사다 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닭에 집착하게 된 것은 작은 언니가 닭요리를 해주고 싶어했고, 닭이 없으니 더 집착하게 됐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다시 한 번 아저씨에게 확인하고 있을 때 자전거 택시를 모는 한 사람이 다가와서 엿들었다. 그가 트리니다드에서 닭을 구해 주겠다고 했다. 닭을 키우는 집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를 따라서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닭을 구한 결과 한 마리를 자전거 뒤에 실을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산초’였고, 유쾌한 친구였다. 
산초는 자전거 택시를 운전하는 친구로 그의 집에서 닭을 잡았다

산초는 자신이 직접 닭을 잡아주겠다고 했고, 그의 집으로 살아 있는 닭을 가지고 갔다. 산초네에서 그의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놀고 있는 동안 산초는 뒷마당에서 닭을 잡았다. 산초 아내는 닭을 직접 잡는 모습을 볼 수 없다며 끔찍해했다. 하지만 산초는 끄떡없이 깔끔하게 닭을 손질해 왔다. 산초와는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산초 덕분에 작은 언니는 저녁에 닭요리를 해냈고, 우리는 옥상에서 근사한 만찬을 즐겼다.

<세계섹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
  • 이다희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