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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도덕의 관계는?…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

입력 : 2015-11-20 03:00:00 수정 : 2015-11-20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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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 끝줄 소년’
연극 ‘맨 끝줄 소년’(사진)을 대할 땐 하나의 답, 주제를 기대하면 안 된다. 대목대목 난사되는 질문을 기꺼이 받아낼 준비를 해야 한다.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꾀하기보다 보는 이에게 질문 보따리를 안기는 연극이다. 이 작품은 묻는다. ‘예술과 현실의 관계는’ ‘예술에서 도덕이란’ ‘문학은 관음증과 위험한 상상의 산물이 아닌가’ ‘작가의 펜이 180도 방향을 바꿔 독자를 향한다면’.

이야기는 고등학교에서 시작한다. ‘지독하게 무식한 학생들’의 작문 과제에 절망하던 문학 교사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의 글을 발견한다. 교실 맨 끝줄에 앉는 17살 소년이다. 남몰래 다른 이를 관찰할 수 있는 자리다. 병든 아버지와 집 나간 어머니를 둔 클라우디오는 동급생 라파의 집을 글로 묘사한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 부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라파에게 흥미를 느껴서다. 소년의 글은 라파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담았지만 불쾌한 관음증이 연상된다. 타인이 내 일상에 침범한 것 같다. 우월한 듯 비웃는 소년의 관점과 태도도 한몫한다.

교사는 소년의 글에 빠져든다. 디킨스, 체호프를 읽으라며 작품 완성을 재촉한다. 교사의 아내는 남편에게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소년을 말리라고 다그치지만 통하지 않는다. 소년은 라파의 가정 깊숙이 파고든다. 어두운 복도를 몰래 걷고, 잠든 부부의 침실에 들어간다. 소년의 글에서 현실과 허구를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서너 개 책상이 놓인 이 연극의 무대는 두 번 바뀐다. 처음에는 교사 부부가 왼편에 있다. 교사가 주도권을 쥔 듯한 배치다. 글쓰기가 깊어져가자 클라우디오의 자리가 왼쪽으로 바뀐다. 소년이 글로 창조한 세계에 심취해 상상을 더하는 시점이다. 마지막에는 네 개의 책상이 동등하게 나란히 놓인다. 점점 도를 넘던 소년이 문학 밖 현실과 마주하는 대목이다. 마지막에 무대는 객석으로 확대된다. 소년이 라파의 집을 훔쳐보고, 관객은 다시 이들을 지켜보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연극은 글쓰기 과정을 담았다. 현실을 선택적으로 본 뒤 글로 옮기던 소년이 능동적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자 평면적 인물들에 살이 붙는다. 관객이 소년의 글만 읽는다면 흔한 소설 이상의 느낌을 갖긴 힘들다. 연극에서 ‘실재하는 라파 가족’을 보여주는 순간 풍경이 달라진다. 글 속이라면 그러려니 할 소년의 행동이 현실과 나란히 보여지자 도덕적 갈등을 일으킨다. 관음증, 시선의 폭력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다. 수학을 잘하는 라파는 도덕과 철학에는 약하다. 모순적이게도 기괴한 설치 미술을 하며 예술의 자유를 외치는 교사의 아내가 소년의 도덕성을 먼저 걸고 넘어진다. 교사는 예술과 도덕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연극은 문학이 얼마나 강하면서 동시에 나약한지 보여준다. 글은 현실을 구속하지만, 라파가 소년의 행태를 알아채자 허구의 세계는 부서지고 만다.

이 작품은 예술의전당이 기획·제작했다. 연출은 극단 코끼리만보의 김동현이 맡았다.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50)가 원작을 썼다. 프랑스 감독 프랑수아 오종이 2012년 이 작품을 영화 ‘인 더 하우스’로 만들기도 했다. 공연은 내달 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진행된다. 1만∼5만원. (02)580-1300

송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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