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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개천용 많아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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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1-19 20:56:08 수정 : 2015-11-19 20: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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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존치론은 또 다른 특권의식 발로 아닌가
더이상 퇴행적 용은 안돼
20년된 로스쿨 역사성 무시는 반법률적 행태
표보다는 미래 봐야
57회 사법시험에서 최고령 합격자 김모(41)씨는 1994년에 시작된 법조인의 꿈을 21년 만에 이뤘다. 그는 중간에 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일하다 2009년 35살 나이로 다시 고시원에 들어가 6년을 버텼다고 한다. 그는 “누구나 합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합격자는 3%에 불과하다. 바늘구멍이다. 그의 성공담 뒤에는 그와 같은 길을 가는 수많은 고시낭인들의 눈물이 있다. 매년 나머지 탈락자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 것인가. 뒤늦은 승리의 쾌감에 사로잡힌 이 최고령 합격자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로, 대기만성이고 고진감래라는 말로 찬사만 늘어놓아도 되는지 헷갈린다.

사시존치론이 논란이다. 엊그제 국회에서 공청회가 열렸다. 공청회 직전 대한변협은 사시 존치를 촉구하는 6000여명의 서명부를 국회 법사위에 제출했다. 전국 25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학생회장단과 로스쿨 학생들도 국회에서 반대집회를 열었다. 싸움의 본질은 국가의 백년대계가 아니다. 국민의 눈에는 밥그릇 다툼으로 비쳐지고도 남는다. 치열한 논리대결의 무대 뒤에서 ‘사시충’ ‘로퀴벌레’ 등 경박하고 속된 인신공격성 표현이 난무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백영철 논설위원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계층 갈등은 갈수록 나빠지는 추세다. 이런 사회에서 재기의 기회마저 뺏기면 흙수저 출신은 평생 루저로 살아야 한다. 계층상승의 사다리는 필요하다. 사시존치론자들은 이 관점에서 패자부활전을 요구하고 희망의 사다리를 걷어차지 말라고 주장한다. 사시존치를 선호하는 국민 여론조사 결과도 제시하고, 로스쿨의 문제점을 집중 부각시키는 이유는 딱 하나다. “개천용을 죽여서는 안 돼!”라고 외치기 위해서다.

언젠가 사법시험 합격기에서 읽은 적이 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돈 많은 집안의 여자와 결혼한 뒤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것”, 그에겐 그게 인생의 목표였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썼다. 그래서 사시에 합격하면 개천에 사는 붕어와 미꾸라지, 개구리와 결별하고 ‘개룡남’(개천에서 용된 남자)이 된다. 물론 다 그런 유는 아니겠지만 사시를 통한 개천용의 등극은 출세주의자의 행로로 투영된다.

그러나 이 시대에 이런 퇴행적 용은 곤란하다. 개천용은 사회 각 분야에서 나와야 바람직하다. 굳이 일약 용이 되는 것, 더구나 사시의 통로만을 고집할 시대가 아니다. 개천의 가재나 붕어가 실력을 갈고 닦아 때가 무르익으면 이 사회의 주축이 되는 시스템이 더 우리에게 필요하다.

사시존치론자들의 목소리가 이기적이긴 하지만 이들의 잘못만 탓할 계제는 아니다. 문제는 이들을 두둔하고 사시존치론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한 집권당 새누리당에 있다. 로스쿨 체제는 논의시기를 포함하면 20년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뿌리가 같은 보수정권인 김영삼 정부에서 로스쿨 도입검토를 본격화했다. 국민은 사시출신의 특권화, 고시 낭인의 사회적 폐해 등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양질의 법률서비스 제공을 바랐다. 결실은 10년도 더 지나 노무현정부 말기인 2007년에 맺어졌다. 그때 통과시킨 로스쿨법에 의해 로스쿨 체제가 출범했고 사시는 2017년 시험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돼 있다. 새누리당은 이 같은 역사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

로스쿨 제도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렇더라도 과거 동시대의 선배들이 치열한 토론과 시행착오 끝에 마련한 법률을 제대로 시행도 하기 전에 뒤엎어버리면 법치국가의 길은 허언에 불과해진다. 국회 법사위에서 사시존치법을 논의하더라도 새누리당은 눈앞의 표 대신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법률 조항만 달달 외워 사시라는 면허를 딴 법률전문가보다는 다양한 학문을 이수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법률인이 우리 사회엔 더 필요하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막말을 해대는 판·검사의 특권의식이, 폐쇄주의 문화와 패거리 의식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사시를 예정대로 폐지하는 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 달라진 법조계의 문화를 앞으로 새 부대에 담을 수 있다.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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