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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이제 ‘테러 징비록’ 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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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1-23 21:00:34 수정 : 2015-11-23 21: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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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대상으로 한 IS의 테러 전쟁, 안전지대는 없다
테러방지법 하나 만들지 못하는 한국
어육신세로 변한 뒤 또 징비록 쓸 건가
‘징비록(懲毖錄)’.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도체찰사였던 유성룡이 왜란에 관해 적은 책이다. 자서(自序)에 이렇게 썼다. “시경에 지난날의 잘못을 경계하여 훗날의 환란에 대비한다(予其懲而毖後患)고 했으니, 이것이 징비록을 쓰는 까닭이다.” 시경의 구절은 주송(周頌) 소비장(小毖章)에 나온다. 탄핵으로 삭탈관직당해 안동으로 낙향한 유성룡. 무엇이 그의 머리를 메웠을까. 7년 왜란에 어육신세로 변한 백성, 차마 볼 수 없던 아비규환. 그런 비극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붓대를 곧추 잡지 않았을까.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는 김성일에게 따져 물었다. “장차 병화(兵禍)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왜란 직전 일본 통신사로 함께 다녀온 정사 황윤길은 “병화가 있을 것”이라 하고, 부사 김성일은 “그런 정세를 보지 못했다”고 하니 물은 말이다. 김성일 왈, “황윤길의 말이 지나쳐 인심이 놀랄까 해명한 것”이라고 했다. 유성룡과 김성일은 동인이었다. 황윤길은 서인이다. 낙향한 유성룡. 이런 생각을 했을 성싶다. “김성일이 그 말만 하지 않았던들 조선 백성이 이토록 어육이 됐을까.” 징비록의 글 행간에는 화를 억누른 느낌이 풍겨난다. 나중에 유성룡은 남인, 김성일은 북인으로 갈린다. 유성룡을 탄핵한 세력이 또 북인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유비무환(有備無患). 징비록을 관통하는 정신은 네 글자로 요약된다.

이슬람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의 테러로 세계가 어수선하다. 13일 파리 테러. 130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쳤다.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테러다. “다음 목표는 로마, 런던, 워싱턴”이라고 공언한다. 서방 주요 도시마다 1급 경계령이 내려졌다. 말리 바마코의 호텔 인질극. 알카에다까지 나섰다.

“알라의 뜻”이라고 한다. 참수를 밥 먹듯 저지르고, 어린이까지 테러의 도구로 삼는다. 죄의식은 있는가. 없다. 그런 살인 행위가 신의 뜻인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이런 아전인수도 있는가.

역사를 돌아보면 비슷한 전쟁이 있었다. 십자군전쟁. 1096년부터 1272년까지 176년에 걸친 전쟁이다. ‘암흑시대’ 중세 유럽을 지배한 교황이 주도한 전쟁이다. 이슬람교도인 셀주크 투르크가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동로마제국을 공격한 것으로부터 전쟁은 시작한다. 동로마제국의 지원 요청을 받은 로마교황 우르반 2세. 이렇게 외쳤다.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싸우다 쓰러지는 자에게 죄의 사함이 있으리라.”

십자군전쟁이 끝난 지 740여년. 역사는 발전했다. 인류 지성도 발전했다. 중세 광기에 젖은 종교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21세기 이성은 십자군전쟁을 어떻게 평가할까. 아직도 ‘하나님의 전쟁’이라고 할까. 아니다. ‘도그마의 광기’가 부른 역사적 비극으로 평가한다. 교황 우르반 2세. 비극을 잉태한 인물로 평가한다.

IS가 말하는 알라의 뜻? 그것은 신의 이름을 내건 역사를 거스르는 광기의 도그마일 뿐이다. 많은 이슬람교인이 품은 알라의 뜻과는 전혀 다르다. 서방 국가의 반격을 ‘제2의 십자군전쟁’이라고 부른다. 왜 그렇게 불러야 하나. 시시비비를 사상(捨象)하는 그 용어는 반인륜적인 IS 행위를 정당화하는 말은 아닐까. 테러를 종교의 대립으로 포장하니 그렇다.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의 안전이다.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으니 테러 안전지대일 수 없다. 5년 새 추방된 테러 위험 외국인 48명은 왜 대한민국에 왔을까.

테러방지법. 14년째 국회에서 낮잠 자고 있다. 왜? 야당이 “사찰과 여론조작을 할 것”이라며 반대하니. 또 하나의 정쟁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G20 회원국 42개국 중 테러방지법을 갖고 있지 않은 나라는 4개국 뿐이다. 국제 테러리스트 명단에 오른 위험인물을 잡아도 추방만 할 수 있으니 이것이 정상인가. ‘테러 방벽’은 없다. 국민의 생명을 어떻게 지키나.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정쟁은 동·서인의 당쟁을 빼닮았다. 유성룡의 징비록 하나로도 모자라는가. 어육신세가 된 뒤 또 ’테러 징비록’을 써야 하나. 참 한심한 노릇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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