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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87년 체제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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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1-25 21:33:09 수정 : 2015-11-25 21: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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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DJ 떠났지만 87년 체제 더 굳건 지역패권주의 심화
새로운 틀 논의 없이 통합의 정치 어려워
1987년 12월16일, 서울 마포 어느 골목길을 헤매고 있었다. 제13대 대통령선거 대학생 공명선거감시단에 참여했는데, 투표소 주변을 돌며 대리투표나 투표용지 바꿔치기를 적발하는 게 임무였다. 내놓고 불법투표를 할 턱도 없고 그저 길거리를 배회하며 수상한 동태가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였다. 그때만 해도 세상이 바뀔 줄 알았는데 기호 1번 민정당 후보가 당선돼 김이 샜던 기억이 난다.

당시 통일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오늘 국회에서 열린다. 평화민주당 후보였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6년 전 서거했다. YS는 생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DJ에게 가장 서운했던 일로 87년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가 무산된 걸 꼽았는데 두 사람이 천상에서나마 회한을 풀는지 모르겠다. 87년의 역사를 바꾸진 못했더라도 두 사람이 차례로 대통령을 했고 수많은 이들의 애도 속에 떠났으니 여한이 남았을까 싶다. 

황정미 논설위원
YS 서거로 ‘양김시대’에 새삼 조명이 쏟아진다. 그들이 정치권에 남긴 유산이 큰 탓이다. 그 뿌리는 87년 체제다. 두 사람이 이끈 민주화 투쟁의 결실인 87년 체제의 핵심은 5년 단임 직선제 개헌과 소선거구제다. 덕분에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제시한 ‘선거에 의한 두 번의 정권교체 테스트’를 통과했다. 민주주의가 공고해졌다는 증거라지만 시간이 갈수록 폐해 또한 커졌다. 몇 년 전부터 학계와 정치권에서 87년 체제의 극복이 화두가 된 이유다.

5년 단임제로 YS, DJ가 돌아가며 대통령은 했어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진 못했다. 집권 중반을 넘어서면 레임덕(권력누수 현상)과 부패 스캔들에 시달리고,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의 정책·사람들은 단죄의 대상이 됐다.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의기투합한 소선거구제는 영남과 호남, 충청으로 나뉜 지역주의를 요지부동으로 만들었다. 아직도 선거 때마다 영호남 지역구는 특정 정당 상징색으로 도배된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맏형이 되고 싶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구시대의 막내’가 됐다. 구시대를 깨려는 나름의 정치 승부수를 던지긴 했다. 한나라당에 “권력을 이양하는 대신 지역구도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선거제도를 고치자”고 했고, 임기말에는 4년 대통령 연임제와 대통령·국회의원 선출 시기를 맞추는 개헌을 제안했다. 당시 여당에서조차 호응을 못 얻었으니 공허한 결말이었다. 돈키호테식 발상으로 치부되긴 했지만 지역주의, 미래권력을 쫓는 정치집단의 기득권은 강고했다.

“정치적으로 87년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새로운 틀을 만드는 데 착수할 때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달 한 토론회 축사에서 한 말이다. 같은 토론회에서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은 “승자독식의 적대 정치, 지역 패권주의를 재생산하는 5년 단임 대통령제, 소선거구제를 혁파해야 한다”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중진 의원도 “87년 체제의 한계가 왔다”고 했다. 정치 불신이 극에 달했으니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여의도 풍경은 달라진 게 없다.

박근혜정부 들어 TK(대구·경북) 출신이 권력 기관장을 독식하고 청와대발 TK 물갈이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지역주의는 더 공고해진 느낌이다. 하긴 야권에선 ‘DJ 정신’을 내세워 호남당이 나올 판이다. 여야가 선거구 획정싸움에 목을 매는 것도 기득권 지키기에 다름아니다. 물밑에서 오가던 개헌론을 끄집어낸 건 친박(친박근혜) 진영인데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가 나오는 순간 그 진정성은 휘발됐다. 이런 패권주의야말로 87년 체제 극복은커녕 굳히기 행태다. 87년 체제 이후 6명의 대통령이 나오는 동안 정치는 뒷걸음질쳤다. 사람의 실패뿐인가. 양김을 떠나보내며 부(負)의 유산도 따져볼 때다. 제도의 실패를 논하지 않고 통합의 정치를 꿈꿀 수는 없다.

황정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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