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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천재에 열광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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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1-26 22:00:53 수정 : 2015-11-26 22: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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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근군 논문 철회… 아쉽고 씁쓸하지만… 분발과 자각으로… 전화위복 계기 삼기를 천재란 무엇인가. 어제 출근길에 한참 생각했다. ‘천재 소년’ 송유근군의 천체물리학저널(APJ) 게재 논문이 철회됐다는 뉴스 때문이다. 사전적으론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 천재다. 하지만 인간 세상은 실로 다채롭다. 재주도 마찬가지다. 굼벵이도 뒹구는 재주는 있다지 않은가. 대체 어떤 기준으로 특별한 그 무엇을 추려낼 것인가. 뜬구름 잡는 격 아닌가.

천재에 관한 담론도 뜬구름에 가깝다. 196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생존 페르스는 ‘순수한 벼락 같은 것’이라 했다. 철학자 칸트는 예술에 국한하는 것으로 선을 그었다. 예술 외의 영역에는 천재가 없다고 본 것이다. 지능지수(IQ)로 천재를 가린다는 주장으로 현대 사회에 뿌리내린 일종의 집단사고를 확립한 이도 있다. 20세기 전반기 미국 심리학계를 주름잡은 루이스 터먼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송군은 터먼 기준에 부합하는 ‘천재’ 후보일 것이다. IQ가 높고, 여덟살에 대학생이 됐고, 더 이른 나이에 상대성이론을 이해했다니까. 하지만 IQ, 조숙성 등으로 천재를 알아본다는 터먼 관점은 이해도, 공감도 어렵고 위험한 감조차 없지 않다. 생사람 잡을 선입견이란 의심을 지울 길 없는 것이다. 송군과 가족, 교수진은 터먼 유형의 주변 관심에는 등을 돌려야 한다. 터먼은 천재 연구로는 독보적 인물이지만 사실 그 연구 자체부터 허점투성이다.

터먼은 미국 초·중등생 25만명 중 ‘천재급 IQ’ 학생 1470명을 추려내 30년 넘게 지켜봤다. 결과는 역사 바꿀 엘리트가 무더기로 나올 것이란 기대와 전혀 달랐다. 절대 다수가 평범한 삶으로 귀착했다. 일부는 터먼이 실패자로 규정한 수준에 머물렀다. 터먼은 “천재는 천재로 남아 있지 않았다”고 탄식해야 했다.

터먼은 집요했다. 역사 위인들의 IQ를 재려고 덤빌 정도였다. 예컨대 코페르니쿠스, 뉴턴 등의 지능 계량화에 나섰던 것이다. 끝내 위인 IQ를 담은 책을 낼 만큼 무모하기도 했다. 그 IQ들이 지금도 인터넷, 책자에 굴러다닌다. 물론 현대 학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평가가 촌철살인이다. “온갖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점철된 문헌 중에서도 가장 진기한 시도였다.”

송군 논문이 표절 논란으로 철회된 것은 아쉽고 씁쓸하다. 내년 2월로 예정됐던 ‘18세 3개월’ 박사 학위 취득이 일단 무산된 것도 그렇고. 하지만 당사자도, 주변도, 사회도 좀 차분하게 볼 필요가 있다. 송군이 천재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송군은 다른 동년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무수한 인생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그런 고개를 하나 더 만난 것에 불과하다. 이번 일을 크게 보자면 끝이 없지만 가일층 분발할 계기로만 삼아도 무방한 일이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한결 분명해진 것도 있다. 가장 큰 것은 ‘천재 소년’ 같은 꼬리표가 붙으면 그것은 인생을 살찌울 양식이 아니라 무거운 족쇄로 남을 개연성이 많다는 사실이다. 따져 보라. ‘천재 소년’의 논문이 아니었다면 그 누가 주목하고 지도교수의 2002년 학회 발표 자료까지 샅샅이 대조 검토했겠는가. APJ 측은 왜 또 유난히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댔겠는가. 송군은 물론이고 그를 이끄는 이들도 연구윤리 등에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

천재란 무엇인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막연히 아인슈타인 등을 떠올릴 뿐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천재 소식에 열광한다. 아들딸에게 기대를 거는 열성 부모도 허다하다. 천재 꿈이 결국 사라지면 학력, 학벌로라도 남다른 증명을 하도록 다그친다. 아이들이 그렇게 해서 행복한지 불행한지 관심을 갖는 법도 없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는다. 못 말릴 풍조다. 터먼과 그 부류가 남긴 부정적 유산이기도 하다.

송군은 그런 풍조의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송군 외에도 많고 또 많을 것이다. 그러니 송군 좌절에 혀만 찰 계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도 없어서는 안 될 국면이다. 다같이 자문해야 하는 것이다. 왜 정체도 알 길 없는 천재를 만들지 못해 안달하는지를.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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