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 와 있나
분노와 슬픔의 시간
영혼을 닦을 그 눈이
비로소 첫눈일 터 시인 박남수는 ‘첫눈’을 두고 “그것은 조용한 기도/ 주검 위에 덮는 순결의 보자기”라고 썼다. 엊그제 전국에 일제히 첫눈이 내렸다. 평양에도 내리고 서울에도 내렸다. 지난 30년 평균보다 4일 늦게 내렸고 서울은 지난해보다 11일 늦었다고 한다. 서울에 내린 눈은 쌓이지 않아 보자기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했지만 강원 산간 지역에는 대설특보까지 발효돼 함박눈이 날렸다. 정선아라리 관광열차를 타고 눈 속 철길을 다녀온 지인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고 느낌을 전했다.
눈이 내려 세상을 덮어버리면 그 순백의 휘장 속으로 세상 모든 악도 잠시 사라진 듯 보일지 모른다. 시간이 정지하고 사람들도 모두 순하고 착해 보일 수 있다.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인정사정 가리지 않는 끔찍한 테러도, 정파와 진영을 갈라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는 이곳 저곳도 잠시 눈 속에 묻혀 표백된 듯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바람은 절박할 때 ‘기도’가 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그는 ‘대설주의보’를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이라고 썼다.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꺼칠한 굴뚝새에게 대설주의보는 분명 ‘백색 계엄령’이었을 터이다. 시인은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이라고 ‘대설주의보’를 맺는다.
다시 눈이 내리는 계절이 시작됐는데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시인의 굴뚝새는 서둘러 뒷간에라도 몸을 감출 수 있었지만 테러와 정쟁과 진압과 저항, 분노와 슬픔이 가라앉을 날 없는 지상의 인간들이 의탁할 곳은 어디인가. 최승호 시인과 지난 연대에 사북을 찾았을 때 그는 “불행에 대한 숙명적인 연대감” 때문에 자주 그곳에 온다고 했다. 그 검은 마을에 지금은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카지노가 들어서서 ‘불행의 연대’ 따위가 설 자리는 없다.
“미욱한 세상, 깨달을 것이 너무 많아 그 깨달음 하나로 눈물 젖은 손수건을 펼쳐들어 슬픈 영혼을 닦아내 보라고, 온 세상 하얗게 눈이 내린다”고, “내 생명 무거운 육신을 벗어 공중을 나는 새가 되라고, 살아 있는 티벳인이 되라고 한밤중에도 하얗게 내린다”(송수권 ‘첫눈’)고 시인들은 여전히 쓰지만 들을 귀가 막혀 있고 아집으로 뭉친 이들에게 첫눈은 단지 하늘의 분비물일 뿐이다. 분노와 슬픔으로 먹먹한 인간들에게도 첫눈이 정서적으로 다가오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겨울 들어 처음 내리는 눈이 사전적 의미로는 ‘첫눈’이겠지만 언제라도 영혼을 닦을 눈물 젖은 손수건으로 두 손에 받아들 그 눈이 비로소 ‘첫눈’일 터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백색 계엄령’으로 받아들일지 ‘순결의 보자기’로 만들지는 지상에 거주하는 속절없는 인간들의 몫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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