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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 관리·세금신고서 작성… 고교 때부터 금융 수업

입력 : 2015-11-29 19:11:48 수정 : 2015-11-30 00: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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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금융교육 현장을 가다]
대학 진학·사회 진출 앞둔 학생들
학자금 대출부터 급여·세금관리 등
생애단계별 실생활 필요한 정보 배워
‘부자 세금 부과’ 열띤 찬반 토론도
글로벌 금융위기 후 민관 역할 분담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취약층을 위한 복지제도와 경제교육 기반은 그 속도를 따르지 못했다.

그 결과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경제위기가 터질 때마다 금융취약층은 길거리로 내몰리기 일쑤였다. 이런 가운데 금융시스템과 금융상품은 날로 복잡해지면서

금융지식 격차가 심화되고 부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세계 각국은 경제와 금융패러다임의 변화에 대처해 범국가적으로 금융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세계일보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의 금융교육 현장을 직접 취재해 4회에 걸쳐 금융교육 선진국의 사례를 소개한다.


“지금 직장에 다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지난 11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버지니아 북부 라우든카운티에 위치한 존캠프고등학교의 11∼12학년(고2∼고3) 합반 금융수업(Personal Finance) 시간. 일을 하고 있느냐는 매리 도허티 교사의 질문에 20여명의 학생 중 6명이 손을 들었다.

한 남학생이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고 시간당 9.5달러를 받는데 세금을 너무 많이 떼서 남는 게 없어요”라고 푸념했다. 도허티 교사가 “그럼 지금 7.25달러인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올리면 어떨까?”라고 묻자 여기저기서 “그건 너무 많아요”, “회사가 감당하기 힘들어서 직원을 많이 안 뽑을 것 같아요”라는 대답들이 나왔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버지니아주 라우든카운티 소재 존캠프고등학교 11∼12학년 금융수업시간에 매리 도허티 교사(왼쪽)가 ‘소득과 세금’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수미 기자
그러자 도허티 교사는 “임금이 올라가면 그만큼 물건이나 서비스 가격에 반영돼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비용도 커질 거예요”라며 “하지만, 여러분에게는 7.25달러가 적지 않아도 자식을 키우고 은퇴를 준비하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해요. 어제 대통령후보 TV토론회는 봤나요? 관심을 가져요. 임금, 세금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라고 독려했다.

◆고교 졸업 전 세금신고서 작성까지 배운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소득과 세금’이었다. 최저임금으로 시작한 수업은 급여와 세율, 세금의 용도에서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한 찬반토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토론이 끝난 후 학생들은 세금신고서를 직접 작성하기 시작했다.

도허티 교사는 “11∼12학년은 곧 직장을 얻거나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에 경제에 아주 민감해야 하는 나이”라며 “재무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포괄적인 내용부터 수표 쓰는 법과 은행계좌 활용법, 급여와 세금, 투자, 보험, 연금, 은퇴계획의 순서로 생애단계별로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을 다룬다”고 설명했다.

이틀에 한 번씩 90분간 두 학기에 걸쳐 받는 금융수업에서 학생들은 여러 가지 대출과 이자율의 종류, 신용의 중요성과 신용등급을 높이는 방법, 그리고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하는 법과 피해를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까지 배운다. 또 대학 학자금을 어떻게 갚을 것인지, 소득에 따라 세율이 어떻게 바뀌는지, 금리정책과 나랏빚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공부한다.

도허티 교사는 변호사 출신이고 옆반 교사는 전직 은행원이다. 이 학교에는 이들처럼 전문직 출신 교사나 직업기술 교사들이 주로 금융, 경제수업을 가르치고 수학이나 사회 수업에서 다루기도 한다.

버지니아주는 3년 전부터 금융과 경제 과목을 각각 고교 필수과목으로 정하고, 두 학기에 걸쳐 이수해야 졸업자격을 준다. 지난해 말 기준 미국 50개주 가운데 22개주가 경제(Economics)를, 17개주가 금융(Personal Finance)을 고교 필수과목으로 채택했다. 20년 전만 해도 일리노이주 1곳에서만 금융교육을 의무화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필수과목으로 채택한 주가 늘기 시작했다. 필수과목으로 채택하지 않은 주에서도 교육과정에는 금융 관련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뉴욕주 뉴로첼고등학교의 대런 거니 교사는 “우리 학교처럼 금융이 필수과목은 아니지만 교사들이 연수를 받고 수업시간에 금융을 다루는 학교가 많다”며 “우리는 12학년생을 대상으로 3주 단위로 금융수업을 하는데, 마트 장보기부터 은퇴 자금 준비하기까지 실생활에 밀접한 주제 중심으로 다룬다”고 말했다.

◆민관 합동의 범사회적 금융교육 네트워크

미국 사회가 금융교육의 중요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민간 금융교육기관인 점프스타트(Jump$tart)가 전국의 12학년(고3)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금융지식 테스트에서 대다수가 낙제점을 받고서부터다. 

이후 재무부, 금융감독기관 등 20개 연방기구가 범정부 차원의 금융교육위원회(FLEC·2004년)를 설립하고, 대통령 직속 금융교육자문위원회(2008년)까지 만들며 그동안 민간단체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이뤄졌던 청소년 금융교육에 정부가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청소년금융교육법을 제정해 점프스타트, 전국금융교육기금(NEFE), 전미경제교육위원회(CEE) 등의 금융교육 전담 민간기구에 5년간(2007∼2011년) 매년 1억달러씩 지원하고 금융교육용 교재와 프로그램도 개발하도록 했다.

정부가 금융교육 법제화 등을 통해 구심점을 만들고 비영리 민간단체와 금융회사, 대학 등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는 수준별, 단계별 교육체계를 마련해 민관이 역할을 분담해 범사회적인 금융교육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이다.

미국의 금융교육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대학으로 이어진다. 수만달러에 달하는 대학 학자금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미국 대학과 대학원들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용과 대출, 예산계획 등을 중심으로 한 금융강의를 강화하고 있다.

위스콘신주 의학대학원에 재학 중인 조윤아(여·26)씨는 “입학 오리엔테이션과 졸업 전 각각 금융강의를 통해 학자금 대출과 이자율의 종류 등에 대해 배우고 정부 학자금 대출을 받으려면 반드시 30분간 1대1 상담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용카드는 다 잘라버리고 하나만 남겨라’, ‘신용카드 한도의 30% 이하를 써야 신용 쌓는 데 좋다’ 등의 정보는 물론이고 대학원에 진학할 때는 ‘대학원을 졸업해 네가 벌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따져봐라. 그 돈으로 이 학자금 갚기 어려울 수 있으니 대학원을 가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 있다’는 조언도 해준다”고 덧붙였다.

미국 금융교육의 최종 목표는 존캠프고교 도허티 교사의 말로 응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금을 왜 내고, 사회보장제도 혜택을 누가 얼마나 받게 될지, 금리 변동과 국가 채무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가르치는 것은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학생들이 똑똑한 유권자가 되기 바란다.”

뉴욕·버지니아=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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