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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 책 맛을 아는 사람이 읽는다”

입력 : 2015-12-01 20:50:47 수정 : 2015-12-01 20: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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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출판사 ‘어크로스’ 김형보 대표
출판사 어크로스 김형보(45) 대표는 20년 가까이 책과 함께하며 다져진 내공으로 나름의 ‘책 비법’을 터득한 사람이다. 그만큼 고생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독하게 밀어붙이는 힘이 느껴지는 젊은 출판인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어크로스 사무실 근처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독서의 계절이니 숨통이 조금 트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가슴을 찌르는 답이 돌아왔다. 독서의 계절이란 누군가 만들어낸 ‘구호’라고 한다.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출판생태계가 발전하려면 다양한 콘텐츠가 필요하다”며 “차별화된 내용을 발굴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재문 기자
“누가 독서의 계절이라고 그럽니까. 구호에 불과해요. 가을에 책이 잘 팔렸던 경험은 한 번도 없어요. 정신 번쩍 들게 만드는 독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단순히 캠페인 때문에 책을 읽어요?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읽는 사람이 읽는다’는 출판계의 오랜 금언이 있지요.”

책 맛을 아는 사람이 책을 읽는다는 의미였다. 그러면서 진짜 독서의 계절을 만들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도 설명했다.

“아이들에게 숙제로 책을 읽도록 만드는 방식이 크게 걱정됩니다. 책에 빠졌던 한 번의 경험이 평생의 책 읽기 습관을 좌우합니다. 굳이 아이디어를 하나 낸다면, 어린이는 1인당 1만원씩, 청소년은 1만5000원 정도 독서쿠폰을 주어서 1년에 한 번씩 책 고르는 경험을 하도록 하면 어떨까요? 물론 숙제는 없어야 합니다. 즐거운 책 구입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이들 가운데 10%만이라도 책을 고르고 고른 책을 숙제 없이 편하게 읽은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아마추어적인 발상일지 모릅니다만….”

출판사들은 책이 팔리지 않아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김 대표는 느긋하다. 대박은 아니지만 스테디셀러 몇 권이 잘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음식의 언어’가 선전하고 있지요. 2015년 한국 사회의 트렌드인 ‘음식과 먹방’ 트렌드의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어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교양 강의에서 발췌해 집필한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큰 반응이 나올지 몰랐어요. 올해 3만부 이상 팔렸는데 이런 책이 한 권 나오면 우리 같은 작은 출판사는 숨통이 트입니다.”

김 대표는 이 책이 선전하는 이유로 지식논픽션을 들었다.

“대학 교양강의에 언어학과 문화사, 행동경제학을 결합한 내용이라 쉬운 책은 아니지요. 그런데도 잘 팔리는 이유가 있었어요. 식욕을 자극하는 요즘 ‘먹방들’ 속에서 좀 더 본질적인 지식의 세계를 알고자 하는 독자의 ‘니즈’가 결합된 결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먹방을 보며 맛있겠다 생각하겠지요. 음식이 어떻게 우리를 유혹하고, 그 역사와 연원이 어떤지 알고 싶어하는 것이죠. 그런 앎에 대한 욕구가 높은 독자들이 예상외로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어크로스가 낸 책 가운데 인기를 끈 책은 또 있다. 최근 출간한 ‘문구의 모험’과 2001년에 나온 과학콘서트는 꾸준히 팔리고 있다.

팔리는 책을 내는 비결을 물어보니 ‘비밀’이라면서도 슬쩍 소개한다.

“저 나름대로 ‘지식논픽션’이라고 부릅니다. 논픽션을 강조하는 이유는 원고의 성격 때문이죠. 지식과 정보, 사유와 성찰을 나름의 ‘이야기 방식’으로 풀어낸 원고를 선호합니다. 지식과 정보를 체계적으로 모으고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자의 개성이 드러난 구성과 이야기 방식으로 일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전개하고 풀어나가는 스타일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원고를 우선시합니다. 전문성이 드러나면서도 독자가 호기심과 재미를 느끼면서 읽어나갈 수 있는 글이면 신인의 글이라도 출간을 결정합니다. 전문성이 있으면서도 ‘라이팅(writing)’에 장점이 있는 원고가 그것입니다. 글쓰기가 부족한 저자의 책은 아무리 유명한 사람의 글이더라도 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새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트렌드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도서시장 양극화는 도서정가제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간 도서의 몰락은 경쟁하는 무료 유력 매체들(인터넷 등)의 영향력 확대가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책 말고도 읽어야 하고 그럴 만한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특히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책 구입 예산을 줄였어요. 구조조정이 언제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느긋하게 독서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책 한 권 사는 비용도 부담이 될 정도로 지갑이 넉넉하지도 않습니다. 청년들은 직장 구하기도 어려운데, 책 읽을 마음의 여유가 어디 있겠어요? 삶이 넉넉해야 책도 읽을 마음이 들겠지요.”

출판생태계와 관련한 의견도 내놓았다.

“생태계의 건강을 위해서는 ‘종 다양성’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명과학자들은 강조합니다. 출판 역시 마찬가지죠. 출판생태계가 발전하려면 다양한 콘텐츠들이 소개되고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남들과 비슷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돈은 좀 벌었는지 묻자 김 대표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어려운 때에 돈 벌었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편집자 출신이 창업했을 때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이 영업과 마케팅입니다. 편집자들은 처음 서점과 도매상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거래를 틀 때 막막함과 좌절을 경험합니다. 다행히 저는 든든한 동지들이 곁에 있었어요. 요즘 일류대학 나온 친구들도 일일이 책방을 찾아다니며 책을 팔고 있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요.”

“출판은 시민교육의 백년지대계라고 봅니다.” 김 대표는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며 좋은 책 만들기에 온힘을 쏟겠다고 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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