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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본發 세계미술시장 중심이동 땐 우리에 기회”

입력 : 2015-12-01 22:23:07 수정 : 2015-12-01 22: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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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조 예술의 미학’ 세미나서 만난 오상길씨
지난 28일 오후 서울 서교동 한국예술연구소(KARI·소장 김미경 강남대 교수)에서 한국문화예술비평 연구진 내부세미나가 열렸다. 5일 오후 홍익대에서 열리는 심포지엄 ‘단색조 예술의 미학과 사회사’ 준비를 위한 세미나였다. 이날 세미나 발제자로 나선 이는 오상길(58·예술과 시민사회 대표)씨였다. 10년 전 ‘한국 현대미술 다시 읽기’ 등으로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한국미술 전체의 지형도 속에서 지금의 한국미술 상황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단색조 회화(모노톤 페인팅)도 예외가 아니라고 했다. 그에게 한국미술 현주소와 과제를 들어보았다.


-요즘 한국미술 상황을 어떻게 보나.

“미술작품 투자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졌다. 전시회 관람객도 늘고 있다. 중국이나 한국 같은 나라들의 경제성장이 세계 문화시장 판도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해외 미술시장에서도 여러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다. 이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추상표현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등 고도의 문화전략을 펼치면서 미술시장의 중심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왔던 일이나, 나폴레옹 집권 이후 미술의 중심도시가 로마에서 파리로 옮겨졌던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중국 미술시장의 급부상과 일부 중국 작가들의 작품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현상도 이런 배경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만약 중국자본의 부상이 미술시장의 중심이동으로 이어진다면 동시대미술 문화의 주도권을 놓고 새로운 어젠다가 형성될 거다. 수세기 동안 유지되어 왔던 서구중심의 동시대미술 문화에 본격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이것이 우리 미술문화산업의 결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 

세미나 발제에 나선 ‘예술과 시민사회’ 오상길 대표는 “서구미술의 ‘후위’관점에서 단색조 회화의 다시 읽기가 필요하다”며 “우리의 고유성과 세계미술맥락을 융합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예술연구소 제공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

“사실 우린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우선 경제와 산업 분야의 성장을 통해 쌓은 자본과 강한 문화적 욕구들이 있다. 또 국제적인 문화흐름도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활용해 우리 미술의 시장경쟁력을 키우려면 수준 높은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미술관이나 저널리즘 같은 제도나 예산은 비교적 충분히 갖춰져 있다고 본다. 전문적 안목과 기획력을 갖춘 전문인들을 제도의 전면에 내세워 전열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미술문화의 동시대성과 한국미술의 독자적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킬 미학과 문화전략을 마련해 가야 한다. 한국에는 좋은 작가들이 많고, 나이가 든 작가들도 세계무대에서는 신진들이라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다. 우리가 가진 자산들을 시대적 흐름에 맞춰 잘 운용하기 위한, 고도의 문화정책과 치밀한 장단기 전략이 필요하다. 시장을 뒷받침할 견실한 국내외 네트워크도 구축해 가야 한다.”

-문화적 ‘후위’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우리 미술의 역사 속에도 많은 재료들이 있다. 한원미술관과 MIA미술관 관장으로 있을 때 5년 동안 문예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4번에 걸쳐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을 모아 8권의 책으로 출간도 했다. 미술의 역사를 통해 20세기 한국사를 서구문명과의 혼성화 과정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역사해석을 위해 기획된 사업이었다.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가 신라에서 꽃을 피우고, 중국의 남·북종화는 겸재에 의해 진경산수라는 독자적 미학으로 구축됐다. 오늘의 서구 미술영향도 몽고의 댕기머리나 색동저고리처럼 우리의 문화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다른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이다.

심포지엄 ‘단색조 예술의 미학과 사회사’ 심포지엄이 5일 오후 홍익대에서 열린다. 심포지엄 준비를 위한 연구원 세미나가 지난 28일 서울 서교동 한국예술연구소(KARI·김미경 강남대 교수)에서 열렸다.
한국현대미술을 서구미술의 문화적 ‘후위’ 현상으로 해석하면서 서구미술과의 차별화, 더 나아가 한국미술로서의 동시대적 가치를 규명해 가야 한다. 서구 중심의 다원주의에 대응하는 신다원주의 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거다. ‘후위’란 ‘전위’와 반대로 낯선 문화의 충격이 기존 문화와 결합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인류문화사 전반에 걸쳐 무수히 발견되는 문화현상이다. 프랑스 인상파는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았고 네덜란드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에게도 전해졌다. 러시아의 칸딘스키도 프랑스 화가인 모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아프리카 흑인조각의 영향을 받은 스페인의 피카소는 프랑스 화가인 세잔의 미술사적 아들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새로운 예술은 기존 예술의 ‘후위’이고, 그들의 창의성 또한 ‘후위문화’의 산물이다. 해석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한국미술을 서구미술의 모방쯤으로 여기는 것은 일종의 콤플렉스의 발로다. ”

-요즘 미술시장에서 1970년대 단색조 미술의 거품논란이 있는데.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의 세 번째 주제가 70년대 단색조 미술이었다. 1년 동안 방대한 자료를 모아 정리하고 일본과 한국의 미술평론가들과 함께 연구작업을 수행했다. 그러나 단색조 미술에 대한 미술계의 연구는 아직도 매우 미진한 상태다. 개별 작가들에 대한 연구나 투자검증은 더더욱 되어 있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누구 말만 믿고 고가의 작품에 거액을 투자하는 건 성급하게 리스크를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주식도 기업의 매출과 업황, 영업이익 등을 세밀하게 따져보고 투자하지 않나. 미술작품에 대한 평가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 작품이 미학적으로나 비평적으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미술계는 이 판단을 도와줄 능력이 없다. 단색조 미술이 서구미술에 대응하는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일은 더더욱 불투명하다. 몇 번의 해외 경매시장 낙찰소식이나 해외전시 호평 같은 뉴스들만이 투자자의 리스크를 낮추어 줄 수치가 되고 있는 현실이 씁쓸하다. 우리 미술계에는 아직 묻혀 있는 좋은 작가들이 많다. 비평적으로 가치 있는 작품도 많다. 커다란 잠재력이 있고 투자의 욕구도 높으니 미술시장도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문제는 ‘서 말의 구슬을 꿸’ 비평역량과 제도적 뒷받침이 없다는 거다. 그런 움직임들이 서서히 일고 있어 기대가 된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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