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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삶처럼 귀해… ‘행복한 종말’ 맞을 권리 있죠”

입력 : 2015-12-01 22:22:35 수정 : 2015-12-02 01: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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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장례문화 개선 나선 두 성직자 종교는 다르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같았다. 두 성직자는 우리 사회의 임종과 장례문화가 너무 소홀이 취급되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죽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두 사람은 종교시설 밖에서 중생을 제도하는 모습도 닮았다. 불교 능행(55) 스님과 개신교 송길원(58) 목사 이야기다.

◆불교계 최초 호스피스 전문병원 설립한 능행 스님

비구니 능행 스님은 불교계 최초로 호스피스 전문병원인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을 설립해 수많은 죽음을 배웅해 왔다. 2013년 8월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소야정길에서 문을 연 자재요양병원은 30개 병실에 114개 병상을 갖췄다.

능행 스님(왼쪽)과 송길원 목사는 우리 사회가 ‘죽음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데 생각을 같이한다. 두사람 모두 삶만큼 죽음도 숭고하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바깥에서 운명해도 집으로 모시고 와 잘 돌봐드렸는데, 지금은 임종을 맞게 되면 집에서 돌보지 않고 병원 중환자실로 보내잖아요. 그렇게 가족과 분리된 상태에서 죽음을 맞기보다 하루 정도는 가족과 시간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임종 문화에 천착하는 것은 죽음이 인생의 최고 순간이 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고, 심신을 최대한 편안한 상태로 유지시켜 줘야 한다. 환자를 고통이나 불안 속에 임종케 하는 것은 산 자의 도리가 아니다. 때론 죄책감에서도 벗어나게 해야 한다. 삶이 귀한 만큼 죽음도 귀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죽는 순간의 현상이 다음 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파했지요.”

자재요양병원에서는 환자도 가족도 호스피스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한다. 병원에는 그런 분위기가 조성돼 있어서 환자들은 활기차 보인다. 대부분 환자들은 “좀 천천히 좀 쉬면서 살 걸” 하고 가장 후회를 많이 한다. 삶에 애착을 보이는 것도 그런 아쉬움을 느끼고 인생을 정리할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능행 스님은 “말기 환자들이 당하는 심신의 고통을 완화해 주면 안락사 숫자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며 ‘완화의료’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임종을 맞는 부모를 대형병원에 모시는 것이 과연 효도일까요? 외관상 체면은 설지 모르지만, 실제 환자도 그런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랜 고뇌 끝에 내린 물음이다. 능행 스님은 최근 죽음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숨’(마음의숲)을 펴냈다. 책 속에는 20년 동안 죽음을 배웅한 이야기가 아련하게 펼쳐진다. 스님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숨이며, 너무 아파서 토해내는 숨이 ‘시(詩)’라고 말한다. 스님의 따뜻한 마음을 통해 삶의 소중함, 임종과 죽음에 대한 숭고함도 느낄 수 있다. 죽음 너머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는 생의 무한한 활력소가 된다.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이끄는 송길원 목사

송 목사는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세상을 품어왔다. 그가 1992년 세운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는 교회가 가정에 눈을 뜨게 하는 가정사역의 효시가 됐다. 2002년 ‘하이패밀리’로 명칭을 바꾸고 더 열심히 활동한 결과, 언론으로부터 ‘행복발전소’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우리 사회 ‘행복만들기’에 큰 힘을 보태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펼쳐온 ‘웰다잉’ 활동 또한 그의 핵심가치 중 하나다.

송 목사는 오는 8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웰다잉 학습장 죽살이 갤러리에서 ‘종활(終活)?삶의 시작점에 서서’라는 주제로 인문학 체험학습을 연다. 참가자들은 유언장 쓰기, 나와 너 용서하기, 수목장 안치 체험 등을 하며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유언의 날’을 제정하고, 말기 환자 가족들을 위한 ‘임종휴가법안’을 발의했으며, 행복한 종말을 준비하는 ‘해피엔딩 노트 쓰기’ 운동을 펼쳐온 송 목사가 제안하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인생을 엮기 위한 행사다.

“출산휴가가 있듯이 임종휴가도 있어야 합니다. 임종휴가가 없다는 것은 죽음을 홀대하기 때문인데, 임종을 지키지 못하면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큰 멍에가 될 수 있어요.”

송 목사가 ‘해피엔딩 노트 쓰기’ 운동을 벌이는 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들과 가족과 지인에게 남기고 싶은 말들을 정리하면서 행복한 종말을 준비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그는 우리 장례문화에 대해서도 일제의 잔재가 많다고 쓴소리를 했다.

“장례문화를 간소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까지 일본을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일제 잔재로 꼽는 것은 ‘상여를 포목으로 묶어 다리 밑으로 내려 끌고 가는 방식’ ‘영정 주변의 화려한 꽃 장식’ ‘겉에만 입는 삼베 두루마기 상복’ ‘삼베 수의’ ‘팔 완장’ 등이다. 전통방식은 상여를 어깨에 메고 가야 하고, 영정 뒤에는 꽃이 아니라 병풍을 설치해야 하며, 상복은 안팎으로 입어야 한다. 수의는 평상복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입혀야 한다. 상여를 개 끌듯 끌고 가는 지금의 방식은 세계적으로 그 사례가 없다고 한다.

“임종문화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요. 이어령 교수가 유언을 최고의 인문학이라고 말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송 목사는 양평에 임야 3만평을 매입해 수목장을 운영해 왔다. 내년에는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하이패밀리센터도 이곳으로 옮기고, 5월에는 게스트하우스도 지을 예정이다. 송 목사에게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다. 그가 양평에서 펼칠 생명과 평화의 향연이 기대된다.

정성수 문화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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