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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증손녀… '무의식의 세계'와 예술을 융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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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2-28 20:30:18 수정 : 2015-12-28 22: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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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국내서 첫 개인전 여는 제인 맥아담 프로이트 영국 출신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로 활동 중인 제인 매캐덤 프로이트(57)는 정신분석학의 선구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증손녀다. 2011년 타계한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루시안 프로이트의 딸이기도 한 그는 그의 증조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내년 5월 8일까지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열리는 초대전을 위해 방한한 그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내 작품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만들어온 가족과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 진정한 자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정신분석의 선구자 프로이트의 증손녀인 영국 조각가 제인. 그는 증조부가 탐구했던 무의식의 세계를 작품으로 풀어 내고 있다. 영국 구상회화의 거장인 아버지 루시안 프로이트의 작품세계와도 교감을 한다.
그는 우리 자신의 모습,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증조부의 이론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가 조직한 구조나 시스템, 우리가 믿는 의식(意識), 그리고 우리가 따르는 규칙으로 가득 찬 세계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 안전하고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 이런 것들에 매달리지만, 이것들에서 모두 벗어난 우리는 진정 누구일까.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사회적 자아’가 아닌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내면의 자아’에 관심이 많다. 버지니아 울프는 ‘타인의 시선은 우리의 감옥이고 그들의 생각은 우리의 새장’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우리 스스로를 끊임없이 바꾸고 고쳐야 한다고 했다. 100여년 전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을 통해 인간의 이성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하였다. 인간의 이성을 맹신했던 모더니즘의 와해에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본능과 감각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앞당긴 인물이다.

무의식 세계를 형상화한 전시장 풍경. 작가에게 예술은 ‘심리현실’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이다.
“가족들로부터 증조부는 재미있고 환상적이며 낙천적인 인물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한 모든 사람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한때는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어 하기도 했다.”

그는 전시장에 런던 프로이트뮤지엄에 있는 프로이트집무실을 꾸몄다. 환자가 편안히 앉거나 누울 수 있는 소파와 집무 책상이 비치된 모습이다. 조각상도 보인다. 사실 그가 만든 조각품들과 그의 작업실 집기들이다. 모델을 바라보고 조형작업을 하는 모습이나 환자를 문진하는 증조부의 모습이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증조부는 그리스 조각을 1000점 가까이 수집을 했다. 환자들이 선물한 것도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 이론 정립을 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가 인간정신의 근원을 탐구하는 데 신화를 나침판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작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증조부의 무의식 이론이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무의식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방어기제(defense)를 작동해 본래 형태를 위장시켰기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위장되어 변형된 형태를 수면 위 의식세계로 대신 보내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자신의 생각이라 믿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하는 주관적인 세상, 즉 ‘심리 현실(Psychic Reality)’이다. 심리학자 수잔 본도 개인의 개별적 경험을 토대로 무의식이 형성되어 버리는 정신결정론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대상은 개인의 내면에 건축된 하나의 구조물 같은 것으로, 한번 만들어지면 한 인간이 외부 세상을 읽는 마음의 틀이 된다.”

그에게 예술가란 이처럼 사람마다 고유한 마음의 생김새를 인식하고, 언어로 소통되지 못하는 개인의 ‘심리현실’의 무게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것이다. 전시장엔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오브제들이 철망 속에 갇혀 공중에 새처럼 매달려 있다. 전통 조각들에서 내부 구조들이 가려지는 것과 대비가 된다. 거푸집 같은 무의식 세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길을 가다가도 우연히 마주친 대상들을 오브제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인형이나 물컵 등이 그에겐 무의식을 환기시켜주는 대상들이다. 이런 작업들은 8살 때 헤어져 23년 만에 재회한 아버지 루시안 프로이트의 영향도 컸다. 제인에겐 배다른 형제가 13명이 있다. 제인 아버지는 첫 번째 부인에게 10명의 자녀를, 결혼하지 않은 두 번째 부인에게서 4명의 자녀를 뒀다. 제인 어머니는 패션디자이너로 자기 세계가 강한 독립적인 인물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6개월간을 나와 함께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모델로 드로잉하며 아버지와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그때부터 작품들이 땅바닥을 향했던 것에서 하늘을 향하게 됐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심리적 치유가 됐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비로소 그는 프로이트라는 성(姓)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연필 모양의 철망 조각도 보인다. 건축가였던 할아버지, 화가였던 아버지가 쓰던 스케치용 연필 형상이다. 비로소 ‘심리적 가족’을 다시 찾은 것이다.

“가끔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저를 돌봐 주셨던 것처럼 우리 아버지를 돌보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부모로서 당연히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작품에서 깊은 밀도와 집중력에 주목한다. 그의 작업에도 자연스레 스며들고 있다.

“아버지가 미친 영향은 작업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작업한 아버지의 초상화는 아버지 작품의 전형적인 화풍을 연상시킨다. 점토처럼 진하고 무거운 질량감과 굵은 붓질이 그렇다. 테라코타를 사용하여 아버지를 조각한 초상조각 작품 또한 이 같은 질감이 살아 있고 거친 점토를 사용했다.”

그의 작품 근저엔 증조부 프로이트가 이지적인 방식으로 숨어 있다. 리비도(Libido)의 방에 놓인 실물 크기의 남성 누드 조각상 ‘1+1’은 대표적인 예다. 내면에 갇혀 있는 모든 것을 내려 놓는 치료 과정에 대한 메타포로서의 작업이다. 이 작품은 프로이트 집무실(치료실)의 소파 앞에 전시된 적이 있다. 예술의 진정한 지향점을 생각게 해주는 작가다.

글·사진=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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