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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처럼 어둡지 않아… 2시간 동안 맘껏 웃을 겁니다”

입력 : 2016-01-10 20:41:55 수정 : 2016-01-10 20: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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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된 연극 ‘날보러와요’… 다시 뭉친 김광림·권해효
“첫 공연을 올리기까지 굉장히 불안했어요. 반응이 어찌 나올지 도대체 알 수 없으니까. 지금도 기억나는데, 문예회관(현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첫 공연이 끝났을 때 무대와 객석이 너무 뜨거워서 견디기 어려웠어요.” (김광림) “다들 굉장히 묵직하고 센 작품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죠.”(권해효) 1996년 2월 묘한 긴장감 속에 연극 ‘날보러와요’가 초연했다. 김광림이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소재였다. 마지막 사건이 벌어진 지 5년째라 끔찍한 기억이 여전하던 시절이었다.


배우 권해효는 “이후 숱한 재공연이 있었지만 지금도 그 초연을 제일 좋아한다”며 “이날 무대를 지켜본 화성 수사본부 형사 세 명도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하더라”라고 회상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이기도 한 ‘날보러와요’가 20주년을 맞아 무대에 오른다. 오는 22일부터 다음달 21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초연 연출가 김광림이 10년 만에 다시 합류하고 역대 출연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다. 1996년 재공연에서 김형사를 맡은 권해효도 무대에 선다.

10년 만에 연극으로 뭉친 김 연출과 권해효를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김광림이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출강하던 1980년대 말 사제지간으로 만났다. ‘묵직하고 세고 뜨거운’ 이면에 서민적 웃음이 있는 이 작품처럼 두 사람의 말에는 무게감과 정감이 공존했다. 김광림이 극을 쓴 계기는 우연에 가까웠다.

연극 ‘날보러와요’ 20주년 연출을 맡은 김광림(오른쪽)과 김형사를 연기하는 권해효는 “더러운 카페트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 굉장히 아름다운 이미지, 세계가 있듯이 이 연극 역시 굉장히 처절한 상황인데 웃음이 터져나오고, 굉장히 코믹한데 씁쓸함이 있다”고 전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90년대 초반 어느 날 연극 연습을 하는데 이동준이라는 학생이 ‘선생님, 화성 이거 연극으로 하면 재밌을 거 같아요’ 하더라고요. 당시 화성사건 용의자를 잡았다 풀어주기를 엄청 반복하던 때였어요. 마침 배우 데뷔 전에 무대감독으로 일하던 이대연이가 앉아 있었어요. 거시기한 얘기지만 그 친구가 얼굴이 억울하게 생겼어요. 범인이 잡혀 오는데 대연이 같으면 재밌을 것 같다 농담했죠. 그 후 시간이 좀 지났는데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거 해보자’ 했죠.”

권해효가 김형사를 맡게 된 이유 역시 익살스럽다. 김형사는 서울대 출신으로 과학수사를 추구하는 인물이다. 초연에서는 배우 김뢰하가 맡았다. 이번 공연에서 김뢰하는 다혈질의 조형사를 연기한다.

“김뢰하는 단국대를 나왔는데 자기가 ‘서울대 나온 연기’가 아니라는 거예요. 참 잘했는데도 계속 ‘서울대 나온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하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늘 연우무대를 드나들던 권해효가 하게 됐어요.”

권해효는 “김형사는 언제나 찝찝한 역할”이라며 “하고 나서 잘됐다, 만족스럽다는 느낌을 한번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제가 아는 한 김형사를 거쳐간 배우들이 다 그랬다”며 “공소시효가 끝나고 미궁에 빠져버린 사건처럼, 김형사 역할 역시 끝날 때마다 스스로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이 연극이 20년 동안 진행되는 것 같아요. 만약 한 시대를 얘기하고 끝내면 90년대 중반의 이야기에 머물겠죠. 저는 식었을 때 맛있는 음식이 좋은 음식이라고 봐요. 마찬가지로 몇년 전 작품인데 올해 봐도 촌스럽지 않은 연극이 명작이죠. 이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이 연극은 9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고전이 될 것 같아요.”

32살에 김형사를 처음 한 권해효는 이제 52살이다. 다른 배역들도 마찬가지다. 20년 세월이 연기에 아로새긴 나이테가 궁금해졌다. 김광림이 답을 대신했다.

“첫날 모여 대본을 읽는데 ‘이건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그냥 되겠구나’라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았어요. 이 사람들하고 10년 만에 연극을 하는데 누가 봐도 믿음이 가게 하더라고요. 연기도 원숙해졌을 뿐만 아니라 작품에 굉장히 확신들이 있어요.”

이날 방문한 연습실은 김 연출의 말대로였다. 무대세트, 의상 없이 의자에 앉아 읽기만 했음에도 화성 경찰서 한칸을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작품의 초연부터 매 프로덕션을 대부분 챙겨보며 영화를 준비했다.

“이 연극은 영화와 달리 웃음코드가 굉장히 많아요. 또 극장과 영화관은 공간이 다르니까 거기에서 오는 충격이 있어요. 연극은 영화보다 더 깜짝 놀라거나 더 가슴 아프거나 더 웃겨요. 두 장르의 일반적인 차이예요. 그러니 돈이 안 돼도 연극을 하는 거죠.” (권)

김 연출은 이번 무대에 작은 변화를 준다. “이런 사건에서 희생자에 대한 책임은 근원적으로 국가에 있다는 걸 영상을 통해 집어넣으려 한다”고 했다. 사회의 외형은 달라졌지만 본질적 문제는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해효는 “쉽게 말해 ‘불통’”이라며 “당시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현장 형사가 겪은 힘듦, 윗선과의 불통이 20,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문제”라고 거들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어둡고 억울하고 칙칙하리라 오해하지 마세요. ‘날보러와요’가 20년을 산 가장 큰 힘은 웃음이에요. 2시간 동안 맘껏 웃을 겁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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