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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서울, 백남준을 다시 만나다

입력 : 2016-02-02 21:06:58 수정 : 2016-02-02 22: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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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10주기 추모전시회 ‘물방울 화가’ 김창열(87)이 50여년 전 백남준(1932~2006)이 독일에서 했던 퍼포먼스 ‘걸음을 위한 선(Zen for Walking, 1963년)’과 ‘바이올린 독주(One for Violin Solo, 1962년)’를 재연했다. 김 작가는 지난달 28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백남준 10주기 추모전 ‘백남준, 서울에서’(4월3일까지)의 개막식 행사에서 끈에 매단 바이올린을 끌고 거리를 걷다가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바이올린을 내리쳐 부쉈다. 이는 50여년 전 백남준이 독일에서 했던 퍼포먼스를 재연한 것이다. 백남준은 서양음악의 상징인 바이올린을 부쉈고, 독일 언론은 그를 ‘동양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라 불렀다.

예술적 동지 요제프 보이스(1921~1986)와 존 케이지(1912~1992)와의 공감대에서 나온 예술행위로 볼 수 있다. 보이스는 “미술은 낡은 사회 구조의 억압적인 면을 제거할 수 있는 진화적이고 혁신적인 유일한 힘”이라고 주장했다. 케이지는 ‘우연성의 음악’을 주창한 미국의 전위 작곡가였다. 

바이올린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재연하는 김창열 화백. 그는 “1960년대 중반 은사였던 김환기 화백이 뉴욕 집으로 불러 알고 지내라며 백남준씨를 처음 소개해줬다”고 말했다. 백남준은 이 자리에 함께 작업하던 전위 첼리스트 샬롯 무어맨과 동행했다.
어쩌면 백남준은 스스로 ‘예술 무당’을 자처했는지 모른다. 본능적인 충동들을 나타내는 이드와 이를 규제하는 에고 사이에서 작두타기를 하며 예술적 영매를 불러내고 있다는 점에서다. 어려서부터 굿판을 보고 자란 백남준은 생전에 “작품을 무의식으로 만들지만 나에게 가장 영향을 준 것은 무당”이라고 고백했다. 백악관에서 바지를 흘러내리게 한거나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였던 김환기 화백이 초청한 자리에서 동행한 첼리스트의 목덜미를 어루만진 행위는 이드와 에고의 경계점에 서고자 했던 모습이었을 것이다.

백남준은 예술은 즐겁게 해주는 고등 사기라고 했다. 그가 말하고 싶었던 나쁜 의미의 사기는 에고의 예술이었다. “예술은 잘하면 사람을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진지한 표정을 내세워 독자들을 눈속임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말한 사기라는 말은 에고의 예술을 일컫는다. 나는 지금도 폼 잡는 예술은 하고 싶지 않다.”

백남준이 예술적 동지의 한 사람인 음악가 존 케이지에 대한 존경을 담아 만든 TV 조각 ‘존 케이지’(1990년).
갤러리현대 제공
백남준은 새로이 등장하는 매체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를 넘어 긍정의 요소를 예술행위로 보여주려 했다. 1950~60년대 등장한 TV와 1965년에 시판된 비디오 카메라를 적극 자신의 작품에 끌어들인 이유다.

“TV 화면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정교하며, 파블로 피카소처럼 자유롭고, 오귀스트 르누아르처럼 다채롭고, 피터르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고, 잭슨 폴록처럼 격정적이고, 재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인 캔버스로 만들고 싶다.”

전시에는 1960년대부터 2000년 이후 작품까지 출품된다. 백남준 사후 국내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 전시라 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개막식엔 홍라영 삼성미술관 리움 총괄부관장,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박래경 한국큐레이터협회 명예회장, 박만우 전 백남준아트센터 관장과 박서보·정상화·이우환·윤명로 화백 등 백남준이 생전 교류했던 문화계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7일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백남준 문화재단 주관으로 ‘백남준 비디오 조각 보존과 뉴미디어아트의 미래’를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백남준 작업을 도와주었던 테크니스트 3인이 발제를 했다. 미국 신시내티 스튜디오 시절을 함께 했던 마크 파스팔은 “한 명의 예술가가 공방에서 혼자 작업하면서 이토록 많은 수의 다양한 규모의 작품을 남길 수는 없는 법”이라며 “남준의 천재성이 빛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남준은 공동 작업에 탁월했다. 비전을 현실로 실현해 줄 사람들을 가까이 두었던 것이다. 주변 이들에 대한 그의 신의와 우정이 그가 가진 가장 훌륭한 재능이었다”고 회고했다. 백남준은 협업자에게 일일이 간섭하는 대신 ‘재미있게만 해(Make it interesting!)’라는 주문만 했다. 백남준의 ‘재미의 예술’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다.(02)2287-3500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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