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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진정한 ‘마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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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2-05 19:07:03 수정 : 2016-02-05 23:3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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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사은회가 뭐예요?”
아! 가슴 먹먹한 이 기분 뭐지
취업률이 최고가치가 된 현실
사제 간의 정감은 어디로 갔나
졸업시즌 추억과 정이 아쉬워
졸업시즌이다. 2월에 학교는 졸업식 준비로 북적인다. 대학생들에게 졸업이란 풋풋한 청춘과의 결별이다. 공강시간에 널브러져 있던 벤치와 학교 동문 쪽 자장면집, 밤늦게 토론을 벌이던 동아리방. 그 모든 낭만적 장소와의 이별이다. 어떤 책임도 부담도 없이 순수하게 젊다는 이유로 방황한 시간, 뜨거운 피로 미칠 수 있는 시간과의 결별이다. 그래서 진추하의 노래 ‘그래듀에이션 티어스’(Graduation Tears)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얼마 전 내게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일이 있었다. 또 다른 의미에서의 먹먹함이었지만, 복도에서 만난 졸업반 학생들에게 올해는 사은회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사은회가 뭐예요?” 응? 사은회를 모른단 말인가. 사은회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사은회를 왜 하지 않느냐고 묻고 있다니. “응, 사은회란 말이야…물론, 슈퍼마켓에서 하는 사은 대행사와는 다른 것이지…” 하며 사은회가 뭔지에 대해 설명을 하려다 나는 무안해져 입을 닫았다. 나는 내가 졸업할 때의 사은회 장면이 떠올랐다. 졸업반 학생들이 모두 한복을 입고 교수 앞에서 큰절을 했던 것이다. 격세지감이 따로 없었다.

김용희 평택대교수·소설가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인서울 대학’에 있던 모 교수로부터 듣던 말이 생각났다. 큰 대학에서는 이미 사은회 행사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그 교수는 “아직도 그런 고풍스러운 미풍이 남아 있다니. 역시 수도권, 지방대학 쪽에는 전통적 정서가 남아 있는 것 같다”며 날 부러워하지 않았던가. 그러더니 어느새 우리 학교에서도 사은회 행사가 사라져 버렸다. 무엇보다 ‘사은회’란 단어를 모른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작년 우리나라의 전국 대학은 교육부에서 하는 대학구조개혁평가의 칼바람에 시달려야 했다. 대학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취업률’이었다. 대학마다 신입생을 ‘낚는’ 문구로 ‘취업률 가장 높은 대학’을 내세웠다. 대학과 전공의 선택은 취업을 위한 최종심급이 됐다.

몇 해 전 우리 학과에서 한 사은회 때가 떠올랐다. “취업도 시켜주지 못했는데 사은회를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어느 교수가 한 말이었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취업의 전당이 됐다. 교수는 학문의 스승이 아니라 취업 가이드가 됐다. 교수로서 어떤 권위적 우월감을 챙겨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씁쓰레한 현실을 피할 수는 없다.

학생들의 사회진출을 위한 준비와 책임이 대학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그런 의미에서 위기가 아니라 기회란 생각이다. 하지만 최우선의 모든 가치가 ‘편리’ ‘실익’으로 전환하고 사회적 소통이 ‘학습된 친절’이나 ‘연대감을 가장한 인맥쌓기’로 대치되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함께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 따로 다른 말을 주고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철에 함께 앉아 있으면서 각자 자신의 휴대전화기만 두들기고 있는 ‘디지털무언족’처럼.

사은회를 하는 것으로 학생들에게 뭔가 대접을 받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 거친 망망대해로 떠나는 학생들과 별리의 형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나도 학생들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수직적 관계를 떠나 동지로서 4년의 추억을 나누고 싶었다. 추억과 신뢰가 때로 든든한 내면의 힘이 돼 현재를 살게도 하니까. 치열한 경쟁과 까칠한 생존현장을 견디게 하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으니까.

정서가 바뀌니 제도와 형식도 바뀐다. 형식이 바뀌니 어휘도 사라졌다. “교수님, 사은회가 뭐예요?” 이제 사은회는 백화점이나 대형슈퍼마켓에서나 하는 ‘기획행사’가 됐다. 소통, 소통, 떠들고 있다. 기획행사로서 공감이니 감사니 하는 말이 공허하게 난무하고 있다. 진심으로 정을 나누는 소통, 감사, 공감이 그립다. 졸업식이 있는 2월엔 더욱 절실해진다.

김용희 평택대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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