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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시작됐다. 토요일과 대체공휴일을 합하면 닷새에 이른다. 음력 정월 초하루인 설날(8일) 전후로 3600만여명의 민족 대이동이 예고돼 있다.

조선 후기의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 등에 따르면 설날에 제를 올리는 것을 차례(茶禮)라 하고, 새 옷 입는 것을 세장(歲粧)이라 했다. 어른 찾아뵙는 것을 세배(歲拜)라 하고, 시절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세찬(歲饌), 이때에 마시는 술을 세주(歲酒)라 했다. 한 해의 소망을 붓으로 써서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풍속도 있었다.

당시에 설날은 원일(元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등으로 불렸다. 조선 후기 문신 윤봉조는 ‘포암집’에 남긴 시 ‘원일’에서 “짧은 밤 묶어 두기 어려우니, 까치 울음소리에 이미 새해 되었네. 새벽에 떡국 끓여 먹는 풍속이 있고, 책 읽는 생애로 세월은 가누나”라고 했다.

설날은 근대에 들어서면서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1895년 고종 때의 을미개혁으로 우리 역사상 처음 태양력 사용이 공식화된 게 단초다. 대한제국 시절과 일제강점기에 이어 해방 이후에도 양력 1월1일의 신정(新正)이 장려됐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대다수가 음력설인 구정(舊正)을 설날로 삼았다. 결국 1985년부터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의 하루 공휴일이 되었다가 1989년부터 음력설을 전후한 3일간이 공휴일로 지정됐다. 신정과 구정 간 오랜 갈등 끝에 민간이 관청을 누른 셈이다.

설날이 민족 최대 명절로 자리 잡았지만, 윷놀이나 널뛰기 등 민속놀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복을 입는 사람도 급속히 줄고 있다. 명절 분위기 내기가 쉽지 않지만,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낸 뒤 어른들에게 세배하고 덕담을 나누는 풍속은 여전하다. 떡국을 먹어야 나이가 더해진다는 믿음도 남아 있다.

예전에 설날은 해와 달과 별이 사계절을 처음 운행하는 때라고 인식됐다. 봄이 시작되는 날이고 만물이 생장하는 때라는 뜻이다. 정조 임금이 국정일기인 ‘일성록’에 “매년 설날 아침에 농사를 장려하는 윤음(綸音)을 내리는 것은 제때에 미리 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하려고 해서이다”라고 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18세기 유학자 김창흡은 설날에 지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묵은 해는 꿈 같고 새해 되니 놀라는데, 흰 머리는 하룻밤 사이에 생겨난 것 같네. 높은 고개에 올라서 먼 들판을 바라보면, 1년 24절기가 눈앞에 전개되리.”

선비들은 설날이야말로 만물이 새로운 날이라고 여겼다. 새해 각오를 다지기에 좋은 때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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