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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스러져간, 아니 오롯이 빛난 두 청춘 이야기 ‘동주’

입력 : 2016-02-07 12:44:00 수정 : 2016-02-08 20: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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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이 정지하고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나자 심장이 털썩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건 마치 좋은 책을 다 읽고 나서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장을 덮는 느낌과도 같았다. 처음으로 저예산 영화에 참여했다는 이준익 감독은 그가 뼛속까지 ‘영화쟁이’임을 다시 한 번 스스로 증명해냈다.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 제작 루스이소니도스, 제공/배급 메가박스(주)플러스엠)는 상업 오락영화에 지친 관객들의 마음에 오랜만에 촉촉한 단비를 내려줄 서정적인 작품이다. 윤동주 시인의 삶을 처음으로 조명했다고 해서 틀에 박힌 평전이 아닐까 걱정도 됐지만, 영화와 문학의 경계를 절묘하게 오가며 주인공의 시선에서 바라본 시대상을 잘 포착해내 관객의 마음을 쥐어흔드는 힘이 느껴졌다.

1917년 만주 명동촌(明東村)에서 출생한 동갑내기 벗이자 고종사촌지간인 윤동주(강하늘 분)와 송몽규(박정민 분)는 29세였던 1945년 같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단 한 달 차이로 생을 마감했다. 감독은 ‘별 헤는 밤’ ‘자화상’ ‘참회록’ ‘새로운 길’ ‘서시’ 등 아름다운 시를 남긴 윤동주의 곁에 독립운동가였던 송몽규가 항상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드라마적인 상상력을 덧붙여 두 사람의 학창시절과 유학시절을 재현해냈다.

시가 좋아 시를 쓰고 싶어 했던 소년 동주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세상부터 바꿔야 한다고 외쳤던 몽규. 이들의 꿈은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 속에 너무도 이른 나이에 짓밟혀 스러져갔지만, (재교토 조선인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의 삶마저 저평가될 이유는 없다. 젊음은 원래 시련 속에서 오롯이 빛나는 것 아니던가.



‘동주’ 속 윤동주는 우리가 그동안 알던 시인이나 독립투사가 아닌, 본인의 진로 앞에 가로놓인 현실의 벽 때문에 고민하고 친구에게 가끔 열등감도 느끼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돼 요즘 젊은 세대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송몽규 역시 학창시절 공산주의에 심취했지만 청년기가 되며 민족주의자로 변모하는 모습이 입체적으로 표현돼 드라마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동주’의 각본과 제작을 담당한 신연식 감독(영화 '러시안 소설' 연출자)은 누구나 교과서를 통해 한 번쯤 배웠을 법한 윤동주의 명시들을 배우의 낭송을 통해 적절히 배치,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별 헤는 밤’으로 매혹 당하고, ‘참회록’으로 토해내고, ‘자화상’으로 눈물짓고, 그리고 ‘서시’에서 심장이 툭 내려앉는다. 흑백의 영상에 담긴 하늘과 바람과 별, 그리고 시의 심상들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찬란한 순간들을 관객들에게 안긴다.

배우 강하늘은 이준익 감독의 제안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위인 윤동주를 공감 가게 그려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괴로울 때도 많았다고 한다. 행동파 지식인인 몽규의 캐릭터가 워낙 강하다 보니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인 동주는 자칫 묻힐 위험성이 크기도 했지만, 강하늘은 겉은 조용하지만 속에선 폭풍이 휘몰아치는 캐릭터를 열정적인 눈빛으로 완성해냈다. 후쿠오카 감옥에서 끝내 울분을 토해내는 발군의 연기를 선보인 박정민은 2016년 충무로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재목이다. 

이 두 주연배우 말고도 재일교포 배우 김인우(일본 고등형사 역), 윤동주의 첫 사랑 여진 역의 신윤주, 그의 시를 사랑한 일본인 쿠미 역의 최희서, 극에 활력을 불어넣은 동창생 철중 역의 민진웅 등 배우들의 연기는 110분간 흑백의 스크린을 꽉 메웠다. 12세관람가. 110분. 2월18일 개봉.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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