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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속으로 한기가 파고드는 늦겨울이었다. 어스름 새벽 경복궁의 북문으로 가마 두 대가 빠져나왔다. “새벽에 어디를 가는 것이오?” 초병이 묻자 수행하던 궁녀가 말했다. “내명부의 일로 급히 나가는 길이오.” 초병이 가마 안을 들여다보니 궁녀 옷을 입은 두 여인이 타고 있었다.

얼마 후 어둠이 걷히자 경복궁에서는 난리가 났다. 왕과 왕세자가 밤새 감쪽같이 사라진 까닭이다. 사실 가마에 탄 두 여인은 고종과 왕세자였다. 궁녀의 가마에 몸을 숨기고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야반도주한 것이다. “나라님이 아라사 공관으로 도망쳐 들어갔대!”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가자 민심이 들끓었다. 백성들의 분노는 친일 인사에게로 향했다. 이들은 친일 내각의 총리대신 김홍집을 발로 밟아 죽인 뒤 종로 거리로 끌고 다녔다. 1896년 2월11일 아관파천 그날에 있었던 일이다.

고종은 380일 동안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렀다. 대신들은 베베르 공사가 발급한 통행증이 있어야 출입할 수 있었다. 모든 국정은 병풍이 둘러쳐진 공사관 안 임시 사무실에서 공사와 협의해 처리했다. 러시아 관원들은 조선의 관직을 팔아먹고 온갖 이권으로 배를 불렸다.

아관파천은 넉 달 전에 일어난 을미사변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일본군과 낭인들은 칼을 들고 경복궁 담장을 넘었다. 이리떼들은 왕을 구석에 내동댕이치고 침을 뱉었다. 명성황후를 처참하게 살해한 뒤 시신에 불을 질렀다. 야수들의 만행을 겪은 뒤 고종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왕의 일거수일투족은 일본의 감시를 받았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외국 공관에서 들여오는 음식만 먹었다. 음식이 든 상자를 직접 열쇠로 열고 식사를 했다. 고종은 늘 열쇠 두 개를 차고 다녔다. 하나는 미국, 다른 하나는 러시아 공사관에서 보내준 열쇠였다. 망국의 황혼에 접어든 조선 왕의 서글픈 모습이다.

오늘은 조선이 국가의 운명을 러시아에 의탁한 아관파천이 일어난 지 120년이 되는 날이다. 그때와 지금의 사정은 물론 같지 않다. 우리의 살림살이와 국력이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안보상황만 놓고 보면 크게 다를 게 없다. 일본의 야수 본능이 여전하고, 조선의 명줄을 죄던 주변 4강도 그대로다. 국토마저 허리가 잘려진 상태다. 그때 조선 국왕은 외국 공관의 열쇠로 겨우 목숨을 연명했다. 자신의 열쇠는 없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열쇠가 있는가.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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