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태훈의 스포츠+]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변신한 박지성

입력 : 2016-02-14 10:00:00 수정 : 2016-02-14 16:21:1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박태훈의 스포츠+]

◇전설의 유니폼 넘버, 13번의 주인공…①박지성, 노력으로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탈바꿈한 스타 

박지성 (1981년 3월 30일생)은 21세기 한국축구 선수 중 가장 성공한 이다.

대학진학의 꿈도 어렵사리 이뤘지만 세계최고 구단 중 하나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주전멤버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 낭중지추(囊中之錐), 그 말 뜻을 알고 싶다면 박지성을 봐라

낭중지추는 능력과 재주가 있다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 알아보고, 언젠간 반드시 두각을 나타낸다는 옛말이다.

박지성에게 딱 들어맞는 고사성어이다.

박지성은 수원 세류초등학교 6학년 졸업반이던 1993년 차범근 축구상을 받을 만큼 축구에 소질이 있었다. 

좋은 재목이지만 체격이 작아 상급학교 진학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다.

안용중학교, 수원공업고등학교를 거친 박지성은 간신히 대학문을 열었다.

1998년 수원공고가 전국체전에서 우승 대학특기자 자격을 얻었으나 박지성을 스카우트 하려는 대학은 없어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이 여기저기 읍소하고 다녔다.

이 소식을 접한 김희태 명지대 감독은 테니스부에 배정된 체육특기자 인원 1명을 간신히 축구부로 돌려 박지성을 스카우트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명지대로선 박지성이라는 송곳을 주머니에 담아가는 순간이다. 

2000시드니올림픽축구 대표팀을 이끌던 허정무 감독은 1999년 1월, 명지대와 연습경기에서 삐쭉 튀어 나온 송곳을 자연스럽게 발견했다.

김희태 감독은 입학예정인 박지성을 연습경기에 투입시키면서 대학후배였던 허정무 감독에게 "괜찮은 얘가 있다, 한번 봐라"며 귀띔했다. 

박지성을 본 허정무 감독은 "약한 듯 약한 듯 하면서 쉼없이 뛰고 공간이해력과 패스웍, 축구지능이 뛰어난 물건이다"며 무릎을 탁치면서 대표팀에 발탁했다.

대학도 프로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박지성이라는 송곳이 주머니 밖으로 툭 튀어나온 순간이었다.

△ 한번 나타난 송곳, 창→명검→보검으로 거듭나 

무명에서 일약 올림픽대표선수가 된 박지성은 이후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박지성은 축구로 대성하려면 세계최고 무대로 진출해야 한다는 꿈을 가졌다. 누구에겐 허황된 꿈이었지만 박지성은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 단 노력하는 자만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에 졸업장도 좋지만 일찍 외국으로 진출해야 세계최고무대로 가는 끈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명지대 2학년때인 2000년 휴학하고 5000만엔 (당시 한화 약 5억 원)으로 J리그 교토 퍼플 상가로 진출했다.

그 와중에 2002월드컵 주전 중 주전으로 뛰면서 '두개의 심장, 히딩크의 아이들'이라는 찬사와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냈다. 


2003년 1월 일왕배 결승때 동점골을 터뜨려 우승(2-1승)에 한몫 단단히 한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의 호출에 따라 PSV 에인트호번으로 옮겼다.

2004-2005시즌 PSV 에인트호번이 UEFA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진출하는 과정에서 유럽축구 스카우터의 눈길을 한몸에 받았다.

특히 AC밀란과의 4강전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쳐 세계3대 명문이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러브콜을 받게 됐다.

같은시즌 맨유는 16강전에서 AC 밀란에 2연패를 당한 마당에 박지성의 예사롭지 않는 움직임과 무엇보다 지칠줄 모르는 운동량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이 필요하다"라는 신호를 스카우트팀에 내렸다. 


박지성은 2005년 6월 22일 맨유와 계약, 7월 14일 입단식을 갖고 등번호 13번을 배정받았다.

맨유 초반 박지성은 오른쪽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왼쪽 공격수 라이언 긱스의 대체선수로 활동했다.

이후 수비와 공격을 모두 맡는 멀티미드필더로 스타가 즐비한 맨유의 붙박이 주전이 됐다.

박지성의 존재가치는 2011년 8월 12일 맨유와 2년 재계약 때 다시 입증됐다.

박지성은 웨인 루니, 리오 퍼디낸드에 이어 팀에서 3번째로 많은 연봉(약 81억500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맨유 1986년 11월~2013년 7월) 말년인 2012년 7월 9일 이적료 500만 파운드 (약 88억원)으로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맨유의 리빌딩 과정에서 내려진 조치였다.

박지성은 1년 뒤인 2013년 8월 6일 퀸즈파크에서 예전 소속팀 에인트호번으로 다시 옮겼다.

PSV 에인트호번에서 1시즌 동안 23경기를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한 뒤 2014년 5월 14일 은퇴했다.


△ 홍명보 대를 이은 대표팀 캡틴

박지성은 2008년 10월 당시 주장이던 김남일이 경고 누적으로 빠지자 주장 완장을 찬 뒤 대표팀에서 은퇴할 때까지 주장을 맡았다.

이에 홍명보와 더불어 대표팀의 주장으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2000년부터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2011년 1월31일까지 100경기에 나서 13골을 기록했다.

△기록과 특징

박지성은 왼발 오른발 모두 능하다. 뛰는 양이 많아 감독에게 여러가지 옵션을 주는 선수로 활용가치가 높다. 이른바 공간을 새로 배치하는 능력(흐름을 간파해 예측하기 힘든 곳으로 이동해 자기 공간으로 만듬)이 좋아 동료들이 편안하게 패스를 내주게끔 만든다.

또 자기편 진영에서 볼을 가진 상대가 여유를 갖지 못하게끔 따라 다녀 이른바 상대에게 공간 재배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장점으로 흔히 말하는 리듬을 끊는 능력이 있었다.

맨유소속으로 134경기에 나서 19골을 뽑았다. 퀸즈파크까지 포함하면 프리미어리그 9시즌동안 154경기에 출전했다.

프리미어리그 우승 4차례와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월드컵 4강, 월드컵 3회연속 출전의 기록을 남겼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