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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4일 안중근 사형선고···日'밸런타인 상술'에 실종

입력 : 2016-02-12 15:16:56 수정 : 2016-02-12 15: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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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업체들도 동조…고가 초콜릿·호텔 패키지 올해도 기승
日 제과업체 '초콜릿 마케팅' 국내 유입돼 풍습으로 정착
2월14일은 젊은 층에 밸런타인 데이(St. Valentine's Day)로 통한다. '여성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일본 제과업체들이 만들어 한반도에 상륙시킨 밸런타인 데이 탓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인식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 묻혀버렸다.

이날은 대한민국 국권 침탈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선고받은 날이다.

1909년 10월 이토가 만주 하얼빈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안 의사는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우덕순과 거사를 계획했다. 같은 달 26일 하얼빈역에 잠입해서 이토를 사살하는 데 성공한다.

현장에서 체포된 안 의사는 일본 측에 넘겨져 뤼순(旅順) 감옥에 갇혔고, 1910년 2월14일 사형을 선고받았다. 옥중에서 자신의 철학을 담은 '동양평화론'을 집필한 안 의사는 그해 3월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런 역사적 쾌거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일본과 한국 식품업계 등이 매년 대대적으로 벌이는 얄팍한 상술 탓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한 '밸런타인 데이 마케팅'은 올해에도 여느 해와 다름 없이 대규모로 이뤄진다.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밸런타인 데이 대목'을 노린 유통업계는 몇만 원대에 달하는 고급 초콜릿을 비롯해 케이크, 쿠키, 와인 등 연인들이 선물로 고를 만한 상품을 대거 선보였다. 다양한 할인 혜택과 이벤트도 등장했다.

서울 등 각지의 고급 호텔은 밸런타인 데이를 맞아 연인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 상품을 마련해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고급 식사에 와인, 초콜릿을 제공하거나 꽃과 풍선 등으로 꾸민 객실을 마련하는 등 마케팅이 치열하다.

부산의 한 호텔 레스토랑은 스테이크와 샐러드, 디저트 등으로 구성된 커플 메뉴 상품을 2인 기준 15만 원에 내놨다. 젊은이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카지노 업체인 강원랜드도 연인을 위한 숙박 패키지 상품을 내놓는 등 '밸런타인 마케팅'은 업계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밸런타인 데이의 유래는 다양하다. 3세기에 순교한 로마 성직자 성(聖) 발렌티노의 기일이라는 설이 그 중 하나다. 성 발렌티노는 황제 허락 없는 결혼이 금지된 시절에 연인들을 결혼시켰다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에는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은 새들이 2월14일 짝짓기한다는 민간 속설도 있다. 이 속설이 젊은이를 맺어준 성인의 기일과 우연히 일치하면서 2월14일이 '연인의 날'로 자리 잡았다는 기원설이 유력하다.

여성이 남성에게 먼저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금지된 옛날에도 이날만은 여성에게 그런 행동이 허락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작 서양에서는 영미권 일부 국가에만 밸런타인 데이 당일 선물이나 카드를 교환하는 풍습이 있을 뿐이다. 온 국민이 초콜릿을 사야만 하는 양 요란을 떠는 모습은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이는 20세기 일본 제과업체들이 '밸런타인 데이에는 초콜릿 선물로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는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벌인 데서 비롯했다. 그 결과 밸런타인 데이는 곧 '초콜릿 주는 날'로 인식됐고, 그런 현상이 한국에도 유입됐다는 것이다.

어떤 날을 기념일로 정해 사랑을 고백하게 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초콜릿 선물이 마치 일종의 '의식'처럼 강요되는 사회현상은 문제라는 우려가 많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는 "초콜릿에 국한하지 않고 사랑을 무엇인가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 마치 의무처럼 됐다"며 "특별한 형식이나 의식을 갖춰야만 사랑이 증명되는 양 받아들이는 현상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2월14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된 안 의사가 사형을 선고받은 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밸런타인 데이의 떠들썩한 분위기에 가려진 역사적 순간을 기억해야 민족정기가 바로 선다는 차원에서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윤원태 사무국장은 "남북관계가 단절되고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아 마치 구한말과 같은 상황에서, 동양 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안 의사의 뜻이 이런 날을 계기로 좀 더 알려졌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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