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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뉘 부르는 소리 들리는가…

입력 : 2016-04-15 10:00:00 수정 : 2016-04-14 22: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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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세상’ 고창의 봄
여행객들이 초록빛 보리와 파란 하늘의 푸르름을 만끽하며 보리밭 길을 걸어가고 있다. 풍경이 다양하거나 색이 다채로운 곳은 아니지만 보리와 하늘이 주는 풍경의 감동은 여운이 길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전북 고창 공음면의 청보리밭에 들어서면 절로 노랫말을 흥얼거리게 된다. 노랫가락은 저마다 다 비슷비슷하다. 잘 들어보면 나이가 지긋한 남자들은 주로 가수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를, 여자들은 가곡 ‘보리밭’을 부른다. 대부분 앞부분만 부른 뒤 노래를 그만둔다. 노래를 끝까지 안 불러도 상관없다.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다. 보리밭에서는 앞부분만 흥얼거려도 충분히 봄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상큼한 생명의 힘을 듬뿍 받은 여행객의 마음은 봄이다.
여행객들이 초록빛 보리와 파란 하늘의 푸르름을 만끽하며 청보리밭 길을 걸어가고 있다. 풍경이 다양하거나 색이 다채롭지는 않지만 보리와 하늘이 주는 풍경의 감동은 여운이 길다. 언덕 위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와 청보리밭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청보리밭을 채우는 소리는 무엇보다 웃음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특히 중년이 된 여성들의 옛적 ‘소녀감성’을 자극한다. 차를 타고 와 보리밭 앞에 내리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푸름에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봄 웃음이 여행객의 얼굴에 만개한다.

이맘때 보는 보리는 추운 겨울을 견뎌 낸 싹이 움을 틔워 웃자람한 것이다. 4월 말이나 5월 초가 되면 이삭이 팬다. 지금이 생애를 마감하기 전 한창 청춘을 보내고 있는 시기다. 초록빛의 보리밭과 노란 유채꽃밭이 젊음의 생기를 왕성하게 뿜어내고 있다. 아직 어른 무릎이 채 되지 않는 풋풋한 보리밭의 푸른 파도를 타고 오는 봄바람에는 유채꽃 향이 진하게 묻어 난다. 풀내와 꽃 향기가 합쳐진 봄 내음을 제대로 느껴 보라는 듯 말이다.
여행객이 청보리밭에 핀 유채꽃 사이로 걸어가고 있다. 풋풋한 보리 냄새와 유채꽃 향기가 어우러진 봄 내음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딱히 입구가 정해진 곳은 아니다. 여행객이 주로 드나드는 쪽에 유채꽃이 심어져 있고, 이를 지나면 보리밭이 펼쳐진다. 청보리밭 안에 들어서면 푸르름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청보리의 푸르름과 파란 하늘의 푸르름만이 온전히 대비되는 곳이 주는 매력은 매우 묘하다. 풍경이 다양하고 색이 다채로운 것도 아니다. 보리와 하늘은 화려함을 쏙 뺐지만 이 풍경의 감동은 여운이 길다. 거기에 언덕 위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 이국의 한적한 곳을 여행하는 듯한 여유를 느끼게 해주는 한 장면이다.

고창의 옛 지명은 모양현(牟陽縣)이다. 모(牟)자가 보리를 뜻한다. 거기에 해, 볕을 뜻하는 양(陽) 자가 합쳐진 곳이다. 해 아래서 보리가 잘 자라는 곳이 고창이란 것이다.

보리밭과 하늘이 그린 수채화를 감상하며 한 바퀴 돌면 30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 다시 유채꽃밭이 나오면 나가는 출구에 이른다. 하지만 그냥 가기엔 아쉬운 듯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쉬 떼어지지 않는다. 유채꽃과 원두막, 보리밭을 뒤로하고 마지막 한 컷을 남겨야 그나마 아쉬움을 더는 듯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이곳만 보기 아쉽다면 보리밭에서 옆길로 빠지면 나오는 잉어 연못과 주차장 쪽에 있는 대나무밭인 도깨비숲, 호랑이왕대밭에 들르면 좋다. 호랑이왕대밭은 도깨비 횡포에 못 이긴 호랑이들이 줄무늬와 비슷한 대나무밭으로 숨어들었다는 얘기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도깨비밭은 말 그대로 도깨비 모형이 있는 대나무숲이다.

오는 16일부터 5월8일까지 이곳에서 청보리밭 축제가 열리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6월 초면 보리가 만든 황금빛 들녘이 펼쳐진다. 이후 8월엔 해바라기밭, 9월엔 메밀밭으로 변신하며 한껏 매력을 선사한다.

고창=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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