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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태양과 바람… 이보다 더 평화로울 순 없다

입력 : 2016-04-15 10:00:00 수정 : 2016-04-14 22: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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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맛’ 그리스 와인여행
그리스 산토리니 이아 마을 석양의 언덕에 서면 쪽빛 바다를 낀 절벽을 따라 하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림 같은 마을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쪽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동화 같은 레스토랑에 있다. 에게해의 석양을 바라보며 칠링이 잘된 화이트 와인 한 모금을 목젖으로 흘려 보낸다.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미풍은 와인과 섞이고 화려한 꽃으로 나를 감싼다. 시간이 멈춰지는가. 빛바랜 영화 속의 슬로 모션처럼, 눈앞에 모든 풍경은 아주 천천히 흐른다. 번잡함은 한순간 사라지고 영혼은 그렇게 고요하고 풍요로워진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파란 바다, 파란 하늘, 파란 지붕, 그리고 하얀 건물. 다른 색을 허용하지 않는다. 갑자기 어디선가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야리야리한 순백의 소녀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면 건물이든 사람이든 바로 화보가 돼버리는 곳. 여기는 산토리니다.
쪽빛 에게해 위로 떨어지는 산토리니의 석양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평화라는 이름의 산토리니

산토리니는 그리스 키클라데스 제도 남쪽 끝 에게해에 있는 섬이다. 1204년에 섬을 점령한 베네치아인들이 지은 이름이 산토리니(Santorini)인데 바로 평화라는 뜻이다.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 
그리스 네메아 지역의 와이너리 관계자들이 자신의 와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산토리니는 아름다운 풍광이 끝없이 펼쳐진 휴양의 도시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 산토리니가 빛나는 이유는 와인 덕분이다. 그리스 와인의 역사는 무려 45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역사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와인양조의 잔해가 바로 제우스 신전이 있는 펠로폰네소스반도 북동부의 네메아(Nemea) 지역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특히 산토리니는 유일하게 그리스에서 필록세라의 광풍이 비켜가 수령 350년이 넘는 포도나무가 즐비하다. 필록세라는 1860년 유럽의 포도밭을 휩쓴 기생충으로 뿌리를 공격해 포도나무가 죽는다. 프랑스는 당시 70% 이상의 포도밭이 황폐화됐다.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반도 북동부의 네메아에 있는 와이너리 세멜리의 와인 저장고에서 와인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산토리니가 필록세라를 이겨낸 것은 바로 이 지역의 특징인 화산토 때문이다. 산토리니는 기원전 1612년에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지역으로 30~40m 두께의 화산토가 생겨났는데 이 토양 성분이 필록세라를 잘 견딘다. 
산토리니 화산토의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포도나무. 수분 보호를 위해 가지를 새 둥지처럼 돌돌 말아서 기른다.

◆에게해 석양을 따라 떠나는 와인 여행

산토리니를 대표하는 곳은 이아(OIA) 마을이다. 중앙 광장에서 교회를 바라보고 왼쪽 골목길을 따라 동화 같은 가게와 카페가 이어진다. 구석구석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골목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해안을 따라 절벽에 하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풍경이 환상적인 이아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석양의 언덕에 이른다. 많은 이들이 에게해의 석양을 즐기려고 이곳을 찾는데 쪽빛 바다를 적시는 붉은 노을은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다.

산토리니 풍경만큼 잘 어울리는 와인은 화이트 와인이다. 이곳저곳 발품 파느라 지쳤을 때쯤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러운 카페에 앉아 시원하게 칠링된 화이트 한잔을 마시면 여행의 피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리스 산토리니 이아 마을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동화풍의 예쁜 카페들을 만날 수 있다.

산토리니 생산 와인의 75%는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이며 대표 품종은 아시르티코(Asyrtiko)다. 이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산도가 대단히 높기 때문에 음식과 만나면 매력을 제대로 발산한다. 그리스 음식은 주로 국물이 거의 없어 아시르티코와 환상의 마리아주(음식궁합)를 보인다. 드라이 푸드는 한국의 물김치처럼 시큼한 음식과 같이 먹으면 잘 들어가는데 산도가 높고 레몬, 라임 등 시트러스향이 좋은 아시르티코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그리스에서 아시르티코 와인이 발달한 배경이다. 특히 와인의 산도가 느끼함을 잘 잡아주기 때문에 기름진 생선, 새우 튀김 등과 페어링하면 좋다.

주로 아시르티코 100%로 만들지만 아티리(Athiri), 아이다니(Aidani) 품종을 블렌딩하기도 한다. 그러면 와인의 산도는 둥글둥글해지고 꽃향과 허브향의 아로마는 더욱 강하고 풍부해진다. 미네랄이 풍부한 화산토에서 자란 아시르티코는 잠재력도 좋아 오랫동안 병숙성하면 미네랄이 더 풍부해진다. 보통 병입 후 6~8년 정도면 절정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리스 산토리니 아시르티코 와인은 산도가 높아 식사 때 곁들이면 음식과 매칭이 잘된다.

아시르티코는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지는 추세인데 재배하기 까다로운 편이다. 산토리니는 비가 거의 오지 않을 정도로 건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도나무 가지를 땅바닥에 깔아 둥글게 돌돌 말아서 새둥지처럼 만들어 키운다. 잎이 나면 포도를 덮어 습도를 지키도록 하는 재배법이다. 오전 중 바다에서 밀려오는 습도를 새둥지 모양의 포도나무가 잘 품어 비가 오지 않아도 포도나무가 잘 자란다.

◆포도품종의 쥐라기 공원

그리스 와인은 사실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전체 생산량이 프랑스 보르도의 절반 정도인 데다 아주 좋은 품질의 프리미엄 와인 위주로 약 3%만 수출되는 탓이다. 그리스 와이너리들은 영세하고 소규모라 한 해 12만병 이상 생산하는 곳이 없다. 덕분에 뭔가 이국적이고 드문 와인으로 인식된다. 더구나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 품종에 질려 색다른 와인을 찾아 나선 이들이 그리스 와인을 만나면 그 특이함에 열광하게 된다. 바로 그리스에서만 볼 수 있는 토착품종 때문이다.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근처의 레스토랑 디오니소스에서는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며 와인을 즐길 수 있다.

그리스는 자생 포도품종의 천국이다. 현재 토착품종이 150가지인데 매일 또 다른 토착품종이 발견될 정도다. 모스코필레로(Moschofilero)는 아시르티코보다 복합미는 떨어지지만 더운 여름날 차갑게 해서 벌컥벌컥 마시기 좋은 가벼운 화이트 와인이다. 로제나 스파클링도 만든다.

또 아테네의 테이블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사바티아노(Savatiano)는 산미가 뛰어나진 않지만 과일향이 좋아 편하게 마실 수 있다. 감히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잘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이라고 자신한다. 말라구지아(Malagouzia), 로볼라(Robola), 로디티스(Roditis) 등도 화이트 와인에 많이 쓰인다.

크시노마브로(Xynomavro)는 이탈리아 ‘와인의 왕’ 바롤로의 네비올로 품종과 견줄 정도로 그리스 북부지역 최고급 레드 품종이다. 그리스는 이처럼 그야말로 포도품종의 ‘쥐라기 공원’이다. 와인마니아들이 그리스 와인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테네·산토리니=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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