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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투스카니로 떠나는 여행
올리브 나무가 가득한 숲속에 동화처럼 들어 선 바라키 와이너리의 300년이 넘은 호텔 풍경. 프리미엄 와인과 함께 평화롭고도 고즈넉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4월 투스카니의 태양은 따사롭고 나른하다. 이름 모를 허브 향을 머금은 바람이 뺨을 스치고 한 모금 적신 양파 껍질 빛깔의 로제 스파클링은 햇살에 보석처럼 빛난다. 근심걱정은 이내 사라지고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그냥 빈둥거리는 것의 즐거움. 누구든 자유인이 되는 진정한 힐링이다. 투스카니의 포도밭에서 양팔을 벌리면 나는 태양이고 바람이고 와인이다.

‘언더 더 투스칸 선(Under The Tuscan Sun)’. 2003년 개봉된 영화 속에서 베스트셀러 작가 프랜시스 역으로 나오는 다이앤 레인은 남편에게 이용당해 이혼하고 집까지 뺏긴다. 모든 희망이 날아간 절망 끝에서 그는 무작정 이탈리아 투스카니로 여행을 떠난다. 300년 된 집 브라마 솔레(태양을 기다리는 집이란 뜻)를 사서 수리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녀처럼 밀라노 공항에서 승용차를 몰아 무작정 투스카니로 달렸다. 남쪽으로 볼로냐와 피렌체를 거쳐 4시간30분을 쉬지 않고 달리면 코르토나(Cortona)에 있는 바라키(Baracchi) 와이너리에 도착한다. 일 팔코니에레(IL Falconiere) 와인 리조트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와인의 중심지 투스카니에는 수많은 와이너리가 있지만 바라키를 마음에 둔 것은 영화 속 아름다운 풍광이 담긴 코르토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했다.
리카르도씨가 바라키 와이너리의 상징인 매를 왼팔에 얹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밤 11시를 넘긴 시간이지만 와이너리 오너인 리카르도 바라키(Riccardo Baracchi·58)씨와 미슐랭 가이드 1스타 레스토랑 일팔코니에레의 셰프이기도 한 그의 아내 실비아 바라키(Silvia Baracchi)가 반갑게 맞이한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시원하게 칠링된 이탈리아 토착 품종 트레비아노(Trebbiano)로 만든 스푸만테(스파클링)를 내놓는다. 황금빛 와인을 건배하며 리카르도씨와 이틀 동안의 ‘삼시세끼 동거’가 시작됐다.
 
바라키 와이너리의 와인들. 레드 7종, 스푸만테 2종, 화이트 1종, 빈산토 1종 등 모두 11종의 와인을 빚고 있다.

◆투스카니 태양 아래 서다

바라키의 역사는 16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객실로 쓰는 건물은 모두 이때 지은 것으로 300년을 훌쩍 넘긴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바라키를 찾는 이유다. 전통을 그대로 살린 호텔은 묵은 세월을 보여주듯 그림이며 가구 모두 고색창연하다. 비좁은 계단을 올라 성문 같은 방문을 묵직한 청동 열쇠로 돌려 열고 객실에 들어서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영화 속 중세시대에 와 있는 듯하다. 
바라키의 300여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고풍스러운 건물들. 대부분 호텔로 사용하고 있다.
나무 창문을 열자 투스카니의 태양 아래 코르토나의 그림 같은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발디치아나 밸리(Valdichiana Valley)를 따라 포도밭과 아름다운 전원 풍경이 평화롭게 펼쳐진 풍광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코르토나는 십자군전쟁 때부터 이탈리아에서 매사냥이 가장 유명했던 곳이다. 리카르도씨도 매사냥을 즐겨 바라키 와인의 레이블에 매 그림을 담았다. 관광객들은 리조트 내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에서 수준 높은 메뉴와 함께 바라키 와인 11종을 즐길 수 있다. 바라키는 인근에 와인바 보데가 바라키와 레스토랑 로칸다 델 몰리노(Locanda del Molino)도 운영해 다양한 정통 이탈리아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보데가 바라키에서 치즈 등 지역 특산물을 구매할 수 있다. 로칸다 델 몰리노에서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송로버섯에 트러플 오일을 곁들인 파스타가 인기다.
미슐랭 가이드 원스타를 받은 일 팔코니에레 와인 리조트의 레스토랑.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정통 이탈리아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미슐랭 가이드 원스타인 일 팔코니에레 레스토랑 메뉴들. 파스타를 비롯한 다양한 이탈리아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와인이 담긴 구리 욕조에서 스파를 즐기고 테라피 마사지와 투스카니의 태양 아래 수영까지 즐길 수 있으니 여기가 천국이다. 바라키 패밀리가 수백년 동안 사용하던 교회도 있는데 지금은 결혼식장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미국 유명 여행 잡지 트래블 앤드 레저가 매년 선정하는 월드베스트 어워드 톱 100 리조트에 일 팔코니에레 와인 리조트는 2007년 6위, 2008년 2위에 올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바라카 패밀리가 예배 드리던 교회. 지금은 주로 결혼식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투스카니 역사로 빚는 와인

바라키 패밀리는 1851년부터 이곳에 정착해 7대에 걸쳐 올리브를 재배하고 와인을 빚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와인을 만들었지만 주로 가까운 지인들과 가족들이 자체 소비하던 와인이다. 본격적으로 와이너리를 확장한 것은 리카르도씨가 14살 때 부친이 작고하면서부터. 당시 포도밭은 1㏊에 불과했는데 현재는 4곳에 32㏊로 늘었다.

일반인에게 처음 선보인 것은 2001년 빈티지. 2003년에 시장에 공개됐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세계 최초로 시라와 카베르네 소비뇽을 절반씩 블렌딩한 바라키 아르디토(Ardito)가 저명한 와인평론지 와인스펙테이터에서 93점을 받아 투스카니에서 가장 좋은 10대 와인에 선정된 것이다. 특히 유명한 이탈리아 명품 와인 ‘슈퍼투스칸’ 사시카이아(92점)를 제쳐 와인업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2006년에는 와인스펙테이터 95점을 받으며 전 세계 100대 와인에 들었다. 아르디토는 ‘겁이 없다’는 뜻인데, 말 그대로 이탈리아 와인업계에서 거침없는 질주를 한 셈이다.
리카르도 바라키씨가 와이너리를 찾은 방문객에게 직접 스파클링 와인의 병목을 칼로 쳐 오픈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리카르도씨는 이탈리아 와인업계의 선구자이다. 주로 레드 와인만 빚던 이탈리아 대표 품종 산조베제 100%로 스파클링 와인 스푸만테 ‘브뤼 로제 밀레시마토(Brut Rose Millesimato)’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산조베제로 스파클링을 빚는다는 것은 그동안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와인의 혁명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바라키 와이너리 오너 리카르도 바라키씨가 이탈리아 최초로 레드 품종인 산조베세로 빚은 스푸만테 브뤼 로제 밀레시마토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이 와인은 체리, 야생딸기, 장미 향과 함께 화이트 초콜릿, 블랙커런트 향이 우아하게 입 안에 가득 퍼진다. 올해 와인플레저 50대 그레이트 스파클링 와인에 선정됐다. 또 시라 100%로 빚은 바라키 시라는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단 하나의 리제르바급 와인에 선정됐다.

이곳에서는 스파클링 와인을 칼로 쳐서 오픈하는 독특한 ‘사브라주(Sabrage)’도 경험할 수 있다. 프랑스 군인들이 허리에 차고 다니던 날이 휘어진 칼인 사브르(Sabre)로 아주 차갑게 칠링된 샴페인의 병목을 아래로 향하고 강하게 쓸어내리면 입구가 깨끗하게 잘려 나가며 오픈된다. 나폴레옹 군대에서 전쟁에서 승리한 장교의 사기를 높이고 승전을 축하하던 의식에서 유래된 사브라주는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코르토나(이탈리아)=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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