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분석하려 하지 말고, 춤을 즐길 준비만 하고 오세요”

입력 : 2016-04-24 20:38:16 수정 : 2016-04-24 20:38:1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국내 초연 ‘세레나데’ 주역 국립발레단 김지영 통통통, 16명의 발레리나가 마루를 가로지른다. 한쪽 다리를 우아하게 올린 아라베스크 자세다. 두 팔을 꽃송이처럼 오므려 핑글 돌더니 사뿐 날아오른다. 하늘하늘한 치마가 물결친다. 최근 조지 발란신의 ‘세레나데’를 연습 중인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 풍경이다. 국립발레단이 천재 안무가 발란신의 ‘세레나데’를 국내 초연한다. 29일부터 내달 1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다. 글렌 테틀리의 ‘봄의 제전’과 1, 2부로 나눠 공연한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38)은 이 작품과 인연이 각별하다. 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 몸담았던 2003년 그는 ‘세레나데’ 군무에 참여했다. 입단 한 달 만에 덜컥 발목을 다쳐 4개월을 쉰 뒤 처음 선 무대였다. 2인무가 아닌 큰 규모로 발란신을 추기는 처음이었다. 추억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연습에 앞서 만난 김지영은 “아주 옛날에 알던 친구를 만난 느낌”이라고 했다.

“20대 중반이었죠. 2002년에 네덜란드로 가서 한 달 만에 다쳤어요. 발목을 심하게 삐어서 4개월간 쉬었어요. 그 전에도 후로도 그렇게 심하게 다친 적이 없어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힘든 시간이었어요. 일주일을 울었답니다. 당시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10일 앞두고 다친 거였거든요. 유명한 쿠바 무용수와 쿠바에서 ‘돈키호테’를 할 예정이었어요.”

13년 만에 조지 발란신의 ‘세레나데’를 추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이 우아한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꿈이 컸던 만큼 상심도 깊었다. 1997년 국립발레단에 들어와 단 두 달 만에 수석무용수가 된 그는 ‘춤을 더 잘 추고 싶어’ 바다를 건넜다. 그는 “당시 해외에 나간 한국 무용수도 드물었고 외국 발레계에서 한국인의 존재 자체가 희미했다”며 “네덜란드 발레단이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른 채 큰 꿈을 안고 갔다”고 돌아봤다. 부상에서 회복한 뒤 만난 ‘세레나데’는 녹록지 않았다.

“엄청나게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정신없이 했던 것 같아요. 몸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아서기도 했겠지만, 발란신 작품이 보기엔 안 그런데 사람을 아주 힘들게 만들어요. 계속 뛰어다니고 움직이거든요. 하지만 무대에서는 성취감이 엄청 큽니다. 음악과 동작이 너무나 잘 맞아서 희열이 솟아나죠.”

김지영은 이후 네달란드 발레단에서 ‘보석’ ‘라 발스’ ‘스퀘어댄스’ 등 발란신의 작품을 숱하게 접했다. 중간 단계(그랑 쉬제)였던 등급은 2005년 솔로이스트, 2007년에는 최고 자리인 프린시펄로 쑥쑥 올라갔다. 13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세레나데’를 만난 그는 “오랜만에 하니 옛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주역인 ‘왈츠걸’을 맡았다.

연습실에서 미리 본 작품은 여성스럽고 상큼했다. 우아하고 산뜻하며 사랑스러웠다. 2부 ‘봄의 제전’이 원시 지구가 육중하게 뒤척이는 듯한 계절이라면, ‘세레나데’는 꽃, 산들바람, 새의 지저귐이 함께 하는 봄이었다. 연습을 지켜본 강수진 예술감독은 “발란신이 여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세레나데’는 신고전주의 발레 창시자인 발란신이 1935년 초연했다. 차이콥스키의 곡 ‘현을 위한 세레나데’에 맞춰 안무했다. 화려한 무대·의상이 아니라 몸 자체로 음악을 표현하길 원한 안무가의 철학이 잘 드러난다. 김지영은 “발란신은 미국에서 신적인 존재로, 그의 작품을 가지지 않은 발레단이 없다”며 “약간 막혀 있는 듯한 발레에 염증을 느꼈는지, 스타일이 자유롭고 음악에 정말 녹아내리는 듯한 춤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세레나데’ 안무에 얽힌 일화도 엉뚱하다.

“안무 중에 무용수들이 쓰러져 있는 부분이 있어요. 연습할 때 누가 실수로 넘어진 걸 춤으로 만든 거예요. 한 무용수가 리허설에 늦어 후다닥 들어오는 걸 보고는 왈츠걸이 늦게 등장하는 모습으로 표현했죠.”

그는 요즘 국립발레단원들의 실력에 놀라는 중이다. 연습한 지 2주도 안 됐는데 안무를 익히는 속도가 인상적이라 한다. 다만 공연에서 오케스트라 연주가 아닌 반주음악(MR)이 쓰이는 점이 살짝 아쉽다. 그는 “MR는 나를 살짝 치고 가는 듯한데 라이브 연주는 음악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며 “어떤 템포로 나올지 몰라 신경을 곤두세워 듣다 보니, 사랑을 처음 시작할 때처럼 음악과 나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는 게 좋다”고 전했다. 그는 발란신을 처음 대하는 관객이라면 ‘즐기려는 자세’만 가져오면 된다고 조언했다.

“발란신의 작품은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니니 보고 느끼면 돼요. 분석하고 이해하려 하지 말고요. 춤을 즐길 준비만 하고 오세요. 무용을 어려워하는 이유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서인데요. 정답을 찾으려 할 필요가 없어요. 저마다 다르게 느껴질 감정을 즐기면 됩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
  • 이다희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