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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국민 대표를 자유롭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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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25 18:02:02 수정 : 2016-04-25 22: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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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감동 많았던 총선
지역주의 타파 앞장서고
열세 극복한 스타 탄생
지역 해결사 노릇 대신
큰 정치 좋은 정치 하는
국민 대표 역할 해야
20대 총선은 화려한 액션과 특수효과, 엄청난 스케일로 많은 볼거리와 진한 감동을 준 블록버스터급 영화다. 여당을 냉정히 심판하고 야당에 엄중한 경고를 던지며 절묘한 3당 체제를 빚어낸 결말에 이르기까지 손에 땀을 쥔 채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지역구 후보 투표와 지지정당 투표를 각각 다른 정당에 하는 교차투표라는 새로운 기법을 선보였고, 견고한 지역주의를 허무는 충격적인 반전급 엔딩이 펼쳐졌다. 얼마 전 상영된 영화에서 “어차피 대중은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하는 대사 때문에 가졌던 자괴감도 훌훌 털어버리게 해줬다. 청량제 역할을 한 이런 영화에 제목을 붙인다면 ‘국민은 나라의 미래다’ 쯤 될까?

이번 총선에서 수많은 스타가 탄생했다. 최고의 슈퍼스타는 유권자다. 기꺼이 한 표를 던진 2443만746명, 한 표 행사를 거부한 1766만9652명이 모두 근래 보기 드문 흥행 돌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2000만명이 넘는 출연진이 입을 맞춘 듯 일사불란하게 한국 정치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선택을 한 것은 마술에 가깝다. 지역주의 타파의 새싹을 틔운 당선자들은 깜짝 스타가 됐다. 대구의 더불어민주당 김부겸·무소속 홍의락, 부산의 더민주 김영춘·최인호·박재호·전재수·김해영, 호남의 새누리당 이정현·정운천 등은 부르고 또 불러도 싫증 나지 않는 이름들이다. 적지에서 고군분투해 당당히 중앙정치 무대를 밟게 된 ‘소수자’들도 스타 반열에 오를 만하다. 

김기홍 논설실장
그들은 철옹성 같은 지역구도를 깨는 데 앞장서고 절대적인 열세를 극복한 결과 지금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그동안 겪은 시련은 상상 이상이다. 질시와 냉소를 견디고 마침내 이뤄낸 오늘의 영광은 남몰래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일 것이다. 전남 순천의 이정현은 19대 재보선에서 당선된 뒤 1년8개월간 순천을 오가는 비행기를 241번이나 탔다고 했다. 매일 새벽 3시30분에 동네 목욕탕에 가 동네 어르신들의 등을 밀어 드리고 하루를 시작했다는 당선자도 있다.

더민주 비례대표 의원이었던 홍의락 당선자가 컷오프된 것은 저조한 의정활동 성적 때문이다. 법안을 발의하고 회의에 참석하는 국회활동보다 ‘대구 주민과 뜨겁게 소통하는’ 지역활동에 열중해 낙제점을 받았다. 그 덕에 여당 의원을 누르고 지역구 의원 배지를 달게 됐지만, 대구라는 지역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국회의원의 본령인 의정활동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홍 당선자 개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정치문화의 문제다.

국회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 살아남으려면 임기 4년 내내 중앙정치에만 열중할 수 없다. 수시로 지역으로 달려가 주민들과 스킨십을 쌓아야 한다. 민원을 해결해야 하고 지역 사업에 앞장서야 한다.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다는 것까지 알 정도로 바닥 다지기를 해놓지 않으면 다음을 장담할 수 없다. 욕을 먹더라도 국회의사당에서 지역민원성 발언을 쏟아내야 하고, 지역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따내려면 체면 따위는 버려야 한다.

큰일을 하라고 뽑아준 국회의원이 의정활동보다 지역활동에 매달리는 것은 정치를 퇴보시키는 비정상이다. 김부겸·김영춘·이정현 같은 정치인들이, 원대한 비전을 갖고 중앙 정치무대에 첫발을 내딛을 127명의 초짜 의원들이 끊임없이 지역 눈치나 보게 하는 것은 국민의 불행이다. 정치 생산성을 갉아먹는 중복투자이고 자원낭비다. 시도 광역단체장 17명, 시군구 기초단체장 226명, 광역의원 789명, 기초의원 2898명은 오늘도 전국 곳곳을 누비며 지역 발전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지역 일은 지역일꾼에게 맡기면 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큰 정치, 좋은 정치는 외면하고 오로지 지역 민심만 신경 쓰면서 선수만 쌓아가는 생계형 정치인이 많다. 새누리당 이한구 전 공천위원장이 쏘아붙였던 ‘월급쟁이 의원’이다. 이런 의원들은 민주주의에 독이 된다. 대의민주주의는 지역 해결사를 뽑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중앙정치에 전념하게 해야 한다. 유권자는 이번 총선에서 희망의 정치를 끌어올릴 마중물을 붓는 심정으로 신의 한수를 뒀다. 그 희망의 불씨를 지피려는 간절한 마음을 다시 한번 모아보자. 우리가 뽑은 국민의 대표를 지역에서 놓아주자.

김기홍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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