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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와 만납시다] 우리의 점심시간은 오후 3시랍니다

입력 : 2016-04-30 10:00:00 수정 : 2016-04-30 13: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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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는 손님을 위해 밥을 내놓느라 정작 자기들의 밥때는 놓치고 만다. 우리가 만나는 점심시간 요식업 종사자들의 현실이다. 이들은 뒤늦게 밥을 먹고, 다음 끼니 준비를 위해 부랴부랴 재료를 다듬는다. 궁금했다. 남들보다 한 박자 늦은 점심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래서 오후 2시. 무작정 서울 종로구 지하 식당가를 누볐다.




밥에 갖은 채소를 넣고 고추장을 얹어 쓱쓱 비볐다. 옆에는 김과 된장국이 놓였다.

“우리는 늘 이렇게 먹어요. 이런 게 이야깃거리가 되려나 모르겠네.”

28일 오후 2시30분쯤. 서울 종로구의 한 지하 식당가 비빔밥집 직원 김모(52)씨가 멋쩍게 웃었다. 그는 점심시간 직장인 손님들을 치른 동료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김씨는 “오전 9시쯤 출근해서 점심 재료를 챙겨놓는다”며 “10시 반쯤에 늦은 아침을 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점심은 지금처럼 2시 반쯤 먹는다”며 “간격으로 따지면 딱히 늦은 건 아닌데, 전체적인 밥때로 보면 늦은 게 맞긴 하다”고 웃었다.

확실히 주변 식당가는 조용했다.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복도는 매우 고요했다. 너무 조용해서 옆 가게 직원들 이야기까지 들릴 정도다. 건너편 음식점에서는 음악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곳 직원들은 식탁에 앉아 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김씨는 “저녁은 간단히 먹는 게 현실”이라며 “과일이나 빵 등으로 때운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거의 같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불규칙한 식사에 속병이 있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김씨는 자기는 없다며 고개를 저은 뒤, “예민한 분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지하 식당가.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상가는 정말로 조용하다.


종로구 또 다른 지하 식당가에서 돈가스집을 운영하는 양정규(38)씨는 원래 오후 3시쯤 점심을 먹는다. 오전 9시에 가게에 나와서 재료준비를 마친 뒤, 10시쯤 서둘러 아침을 챙겨 먹는다.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 하지만 양씨는 흔쾌히 응했다. 시계는 오후 2시4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날보다 조금 '이른' 점심이다.

양씨는 “돈가스로 점심을 먹느냐”는 질문에 대뜸 고개를 저었다. 그는 “돈가스는 질린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오늘은 순대와 햄으로 점심을 때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가게에 들어갔을 때 양씨는 점심 먹을 준비 중이었다.

양씨는 “대체로 저녁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며 “손님이 없으면 문 닫고, 있으면 늦게 챙겨 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퇴근 때문에) 저녁에는 건물 안에 사람이 없다”고 덧붙였다.

양씨는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두 시간 정도를 자체 휴식시간으로 정했다. 그는 “TV를 보거나 쪽잠을 청한다”며 “점심시간에 몰리는 직장인들을 보면 ‘이제 전쟁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농담을 건넸다.

 
여기도 마찬가지.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지하 식당가는 고요 그 자체다.


인근에서 김치찌개 가게를 운영하는 신모(58)씨는 “(식사시간이) 불규칙하다면 불규칙한 거고, 규칙적이면 또 규칙적”이라며 “예전에 위장약을 먹은 적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그나마 상태가 좋아져서 약을 먹지는 않는다”며 “보통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나 같은 경우가 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점심으로 과일을 먹던 신씨는 시계를 흘끗 쳐다봤다. 빨간 숫자는 오후 3시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신씨는 “원래는 2시 반쯤 먹는다”며 “오늘은 좀 늦었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말에 옆에서 스마트폰을 보던 다른 직원은 “2시나 3시나 어차피 늦게 먹는 건 똑같다”고 말했다.

이들 세 사람은 마지막에 모두 비슷한 말을 했다.

김씨는 “점심시간 몰리는 손님을 보면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손님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양씨는 “손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으며, 신씨도 “장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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