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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동차 문화 100년… 디자인에 숨은 시대상 엿보다

입력 : 2016-04-29 20:24:17 수정 : 2016-04-29 20: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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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이후 산업화·마이카 시대 거치며
우리 자동차 ‘시발’∼‘제네시스’까지 진화
색깔·디자인에 반영된 한국사회 풍경 소개
1909년 영국의 화보지에 실린 일러스트, 자동차가 한 대가 대로를 질주하고 놀란 조선인들이 허둥지둥 달아나고 있다. 말을 타고 가던 양반, 땔감을 실은 소를 몰고 가던 사내, 물장수까지 도로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차에 탄 서양인 세 명은 그 모습이 재밌는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당시 조선인들에게 자동차란 이런 존재였다. 네모난 수레 속에 번갯불이 들어있다느니, 타기만 하면 타죽는다느니 수근거렸다. 한 노인은 “이까짓 게 무엇이 무서우냐”며 자동차에 달려들었지만 나이답지 않은 객기일 뿐이었다. 신문물의 하나였던 자동차는 “위협적인 근대 문명의 등장에 두려워하던 조선의 가여운 현실”을 보여주는 시대의 풍경 중 하나였다.


이문석 지음/책세상/2만2000원
자동차, 시대의 풍경이 되다/이문석 지음/책세상/2만2000원


100여년이 지난 지금, 자동차는 이제 일상이 되었고 자동차 산업은 한국경제를 떠받치는 한 축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자동차가 우리 사회를 반영한 풍경의 하나라는 점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일상의 한 부분이 된 만큼 이전보다 더 예민하게 시대를 비추고 있다. 저자는 자동차를 통해 한국인, 한국사회를 들여다본다. ‘들어가는 글’에서 “이 책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것은 자동차 디자인의 역사를 일궈가는 우리의 생각과 의식의 밑동을 찾아가는 과정, 자동차라는 조형을 통해 우리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1990년대 한국은 탈근대, 개방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국경을 넘어 소통이 자유로워졌고, 정보는 넘쳐났다. 경제적인 풍요를 바탕으로 소비영역이 확장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자동차 업계는 이런 변화를 수용해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에서 벗어나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으로 전환했다. “일반적인 이동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보다 개인적 삶의 필요에 유동적으로 대응하는 디자인”이 고안됐다. 이런 바탕 위에서 다양한 욕구를 반영한 자동차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1909년 영국의 한 화보지에 실린 일러스트. 자동차를 보고 기겁해 달아나는 모습에서 근대 문물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봤던 조선의 현실을 읽을 수 있다.
책세상 제공
‘RV’(Recreational Vehicle) 혹은 ‘라이프스타일 자동차’가 급속히 확산된 것은 여가에 대한 인식 변화와 관련이 깊다. 여가가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는 적극적인 표시로 이해되면서 일상과 여가 생활의 편리성을 혼합한 RV 차량이 인기를 끌었다. 자동차는 “경쟁적이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탈출해 자연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수단”, “스트레스를 풀고 새로운 경험을 확대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색깔의 변화는 ‘신세대’, ‘X세대’ 따위의 이름으로 불렸던 ‘신인류’의 등장을 반영한 것이었다. 개인적, 감각적이며 욕망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성향이 짙은 신세대의 취향에 맞춰 ‘스칼렛 레드’(주홍색), ‘로벨리아’(진보라색), ‘오팔그린’(청녹색) 등 밝고 채도가 높은 색상의 차량이 등장했다. 저자는 “예쁘고 색깔 있는 차-이제 거리에 컬러혁명이 시작된다”는 광고 문구를 달았던 ‘엑센트’가 “기능이나 경제성이라는 모던 디자인의 시각에서 개성과 취향의 문제에 더 민감한 소비시대로의 전환 지점에 있었다”고 평가한다. 

수년간의 작업을 거치기도 하는 자동차 디자인은 자동차라는 물건의 외양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단순히 요약할 수 없다. 자동차 디자인은 당대의 사람들과 사회가 공유한 가치와 욕망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써드아이 제공
‘에쿠스’의 인기를 애국주의와 과시욕의 절묘한 결합으로 설명한 부분도 흥미롭다. 1987년 자동차 수입이 허가된 후 외제 고급 브랜드 자동차는 상류층의 아이콘이 되었다. 2003년 기준으로 외제차는 국내 대형차 시장의 21%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그러나 외제차를 통해 과시욕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껄끄러운 일이었고, 계층 간 외화감을 조장한다는 눈총을 받기까지 했다. 정부기관, 대기업의 국산차 이용은 대형차에 얽힌 애국주의의 영향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에쿠스는 성공과 재력이라는 상징 가치를 취하면서 남의 이목 때문에 외제를 꺼리는 틈새를 파고들었고, 대형차 시장에서 외제차와 승부할 차량으로 인식되면서 국산 대형차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현대자동차에서 10여년간 디자인 실무자로 활동했고, 지금은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저자는 일제강점기 이후 ‘시발’, ‘새나라’, ‘포니’에서부터 마이카 시대의 ‘엑셀’, ‘쏘나타’ 등을 거쳐 지금의 ‘제네시스’까지 자동차 디자인 역사를 훑는다. 여기에 식민지, 해방,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등 우리 사회의 변화를 얽어 ‘자동차 디자인 문화사’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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