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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홀린 ‘마담 옹’의 매력은 품격있는 해학”

입력 : 2016-05-08 20:49:59 수정 : 2016-05-08 20: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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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뮤지컬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속 당찬 그녀들 변강쇠를 홀린 옹녀가 21세기 관객의 마음까지 훔쳤다. 옹녀가 관객과 상견례한 건 3년 전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를 통해서였다. 청소년 관람불가인 ‘18금’에 공연기간이 20일이 넘었는데 객석 점유율 90%를 기록했다. 지난해 재연에서도 인기가 식을 줄 몰랐다. 올해 다시 돌아온 옹녀의 기운도 심상찮다. 5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을 마친 옹녀를 만났다. 국립창극단 단원인 김지숙(43)과 이소연(32)이 초연부터 3년간 옹녀로 분했다. ‘버들가지같이 가는 허리 봄바람에 흐늘흐늘’한 미녀를 연기하던 두 사람은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 모범생 같고 구수했다. 이들은 옹녀의 인기 비결로 품격 있는 해학을 들었다.

국립창극단 김지숙·이소연은 이날 창극단을 더 알리기 위해 평소보다 곱게 화장하고 원피스를 차려입었다. 두 사람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에 대해 “이 극은 생각하면 할수록 더 야한 게 매력”이라며 “‘기물가(己物歌)’에서도 ‘쌍걸랑을 달고’ 이러는데 처음엔 쌍걸랑이 뭔지 모르지만 뜻을 알면 재미가 새록새록하다”고 했다.
하상윤 기자
“대사가 노골적이지만 저질스럽지 않고 굉장히 해학적이에요. 어른이 봐도 키득키득하게 되죠. 공감대 형성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김지숙)

“가사를 듣는 재미가 있고, 전통적 색채가 잘 묻어나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무대·영상이 현대적이라 젊은 층도 끌리는 듯해요.”(이소연)

이 작품은 외설적이어서 불리지 않던 변강쇠타령을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로 재해석했다. 통념과 달리 무대 위 옹녀는 단순한 색녀가 아니다. 강하고 현명하고 품위 있다. 야한 대사도 교태 없이 덤덤하게 처리한다. “냇물가에 물방안지 떨구덩 떨구덩 안녕하슈. 고뿔에 걸렸는가. 마알간 콧물 찔끔하니” 하고 변강쇠의 성기를 묘사할 때조차 표정은 진지하다. 이소연은 “고선웅 연출이 대사를 감정이 없는 것처럼 뱉으라고 주문해 처음에 혼란스러웠다”며 “섹시한 인물이라고 노출하거나 몸을 비비 꼬지 않고 관객이 상상할 여지를 주려는 의도 같다”고 했다. 김지숙은 “옹녀는 색만 밝히는 게 아니라 지고지순 현모양처에 생활력 있는 여성”이라고 전했다.

“연출가가 초반에 색기 있는 옹녀를 그린 다음 뒤로 갈수록 당신들이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라고 얘기하려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첫 대사 ‘옹녀 문안이요’를 기생처럼 하라 했어요. 아직은 덜 섹시한가봐요. 연출께서 오늘도 얘기했어요. 더 섹시해야 한다고.”(이소연)

“저희가 최대한 한 건디 더 이상 기생처럼 안 나오면 안 되는디요. 소연이는 창극단에서 목소리가 제일 섹시한 배우인디, 누구를 시켜도 이 이상 안 나와요.”(김지숙)

전북 이리(현재 익산) 출신인 김지숙은 묘한 사투리를 썼다. “이리도 충청 사투리도 아니고 근본이 없다”고 했다. 질그릇 같았다. 그는 1997년 창극단에 들어왔다. 소리는 15살에 시작했다. 성악을 하고 싶었으나 길이 없었다. 마침 엄마 친구 딸이 소리를 한다기에 따라갔다가 이 길로 들어섰다. 그는 “주위에서 잘한다 하니 그냥 한 거예요. 그래서 이 지경이 됐네”라고 농을 했다.

이소연도 초등학교 5학년 말부터 시작해 대학 때까지 뜨뜻미지근하게 소리를 배웠다. 판소리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붕어빵을 사주며 ‘한번 배워보라’고 했다. 중학생 때는 대회 출전을 위해 친구들과 달리 머리를 기르다 보니 “나도 머리를 자르고 촌스러운 판소리도 안 하고” 싶었단다. 인생의 전환기는 대학 3학년 때였다. 소리를 진득하게 배워야겠다고 스스로 결심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국립창극단에는 3년 전 들어왔다.

창극단에 온 뒤 두 사람은 단골 여주인공이었다. 김지숙은 ‘춘향’ ‘심청 ‘숙영낭자’ 등에서 열연했고, 이소연은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에서 투사 같은 춘향을 보여줬다. ‘…옹녀’는 두 사람에게 의미가 큰 작품이다. 김지숙에게 특히 그렇다.

“창극단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잘 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니 제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 다른 걸 찾아야하지 않나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새로 뭘 하는 게 두려워 힘든 때였는데, 옹녀가 저한테 희망의 끈을 줬달까요. 나도 조금은 더 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긴 했는디, 어찌 목이 노상 쉬어싸서. 하하. 저한테 희망을 준 감사한 작품이에요.”

서로의 옹녀를 평해 달라고 했다. 이소연은 김지숙에 대해 “농염하고 농익다”며 “카리스마 있고 의지가 강하고 강단 있는, 자기 뜻대로 삶을 헤쳐나가는 옹녀”라고 했다. 김지숙은 “목소리 자체가 섹시하다”며 “만들어놓지 않아도 딱 연출이 원하는 옹녀 캐릭터”라고 맞받았다. 이어 “소연이는 힘과 연기력이 있고, 모든 걸 센스 있게 잘한다”며 “소리하는 사람은 목을 타고 나야 하는데 청아하고 높은 성음으로 잘 타고났다”고 치켜세웠다.

두 사람은 최근 옹녀로 프랑스 관객과 만났다. 지난달 14∼17일 현대 공연예술의 최전선인 프랑스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 대극장 무대에 정식 초청작으로 올랐다. 동양에 대한 고정관념과 달리 성과 해학을 버무린 ‘…옹녀’는 현지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시차 적응이 안 돼 새벽에 공연하느라 고되고 장염까지 걸렸지만, 우리 문화를 알릴 수 있어 보람 찬 경험이었다.

“커튼콜할 때 계속 기립박수가 나왔어요. 더 놀란 건 외국말로 노래하니 반응이 별로 없을 줄 알았거든요. 관객이 웃음 포인트마다 웃어서 깜짝 놀랐어요. 마지막 날 공연하고 뒤풀이를 가려고 나왔는데 관객들이 엄지를 세우며 ‘마담 옹’ 하더라고요. 계속 박수 쳐주고 너무 좋았다고 했어요.”(김지숙)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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