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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小窓多明] 우에스기 요잔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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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16 22:04:25 수정 : 2016-05-16 2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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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도 존경했던
희생과 헌신의 리더십
빚더미 기업서 수십억씩 받는
우리나라 CEO 존경 받겠나
정당하고 깨끗한 부자가 돼야
제3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존 F 케네디가 일본 기자단과 회견하는 자리에서 “당신이 가장 존경하는 일본의 정치가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는 “존경하는 사람은 우에스기 요잔(上杉鷹山)입니다”라고 대답해서 일본 기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일본 기자들도 우에스기 요잔이 누구인지를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일본인을 알고 있을까? 그 해답은 1894년에 영어로 미국에서 나온 ‘Japan and The Japanese’(일본과 일본인)이란 책이었다. 일본의 기독교연구가이며 성서학자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가 능숙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미국에서는 안 읽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해져 케네디 대통령도 틀림없이 이 책을 보았을 것이기에 대통령이 그를 알고 존경심을 갖게 된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우에스기 요잔, 임진왜란 이후 약 150년이 지난 1751년 규슈의 작은 영주 집안에서 출생했다가 아홉 살 때 아들을 얻지 못한 우에스기 집안의 사위 겸 양자로 들어갔다. 우에스기는 9대째 일본 동북지방의 요네자와(米澤)번을 다스려왔던 집안으로 15살이 된 요잔에게 번주(藩主)의 자리를 내준다. 번주가 돼 보니 번의 살림은 몰락 일보 전. 과거에 비해 영지가 크게 줄어들었음에도 번의 가신 수에는 변화가 별로 없었고 모두 옛날처럼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농사 외에 별다른 생산이 없었기에 흉년 때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어 주민 사이에는 끼니를 위해 갓난아이를 죽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2년 동안 고심한 후 그는 정치개혁을 단행했다. 우선 스스로 연봉을 1500량에서 200량으로 7분의 1 감봉하는 것으로 시작해 비서실 인원도 50명에서 9명으로 대폭 줄인다. 식사는 매 끼 밥과 국 한 그릇만 올리도록 했다. 그리고는 번의 모든 살림을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로 운영했다. 솔선수범의 철저한 검약, 행정 쇄신, 산업 장려정책이었다. 뽕나무, 닥나무, 옻나무 등 상품성 있는 작물 재배를 적극 권장했고, 농업 인구 확보를 위해 이웃 지방의 여성을 불러들여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같은 작전을 폈다. 당시 통치자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까지 몸소 나서서 행하자 번의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18년 후인 35살에 번주의 자리를 물려주고 뒤로 물러나 앉아 또 권력자의 모범을 보인다. 우에스기 요잔에 힘입어 이 작은 번은 일본 유수의 부유한 곳으로 탈바꿈한다. 케네디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일본인’으로 꼽았고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을 동안 점심을 칼국수로만 하도록 결심케 한 바로 그 인물이다. 그 비결은 자기희생이자 자기 검약이다.

최근 우리 경제에 구조조정 문제가 큰 회오리를 몰고 오고 있다. 잘 나가던 해운, 조선 업종이 갑자기 빚이 크게 늘고 운영이 어려워져 그냥 방치할 수 없으니 과감히 구조조정을 하자는 것이다. 구조조정이란 말은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불필요한 인력을 대폭 잘라낸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남아있는 사람은 안도하겠지만 또 많은 종업원이 길거리로 나앉아 먹고사는 걱정을 해야 한다. 다른 업종도 경제가 커지지 않아 고용을 늘릴 수 없어 이것이 높은 청년실업률로 이어지기에 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3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노사 자율로 근로소득 상위 10% 수준인 연 임금 6800만원 이상 임직원의 임금인상 자제를 주문한 것도 이런 상황의 반영일 것이다.

그런데 한 언론은 이 자리에 나온 경영자의 연봉을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모 전자회사 부회장의 지난해 연봉은 149억5400만원, 사장은 47억9900만원이었고 그 다음이 36억9700만원이었다. 다른 회사는 27억9900만원, 또 21억7800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잘 나가는 기업이야 그렇다고 쳐도 빚더미에 몰린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지난해 연봉도 21억5400만원이었고 감독은행에서 내려온 임원도 고액 연봉을 받았다고 한다. 연봉 6800만원 이상의 임금 인상은 자제하자는 목소리는 이러한 최고경영자의 연봉 소식에 묻혀 버린다. 금융 공기업의 평균 임금이 1억원을 훨씬 넘는 곳이 수두룩하고 CEO들은 그 열 배 이상을 받는 상황에서 임금인상 자제 합의가 자율적으로 될 수 있을까? 스스로 연봉을 7분의 1로 줄인 우에스기 요잔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우에스기 요잔은 35살에 번주를 넘기면서 후임 번주에게 세 가지 글을 남겼다. 이 땅은 선조로부터 자손에게 전해지는 것으로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백성을 자신의 것으로 해서는 안 된다. 또 백성이 번주를 위해 존재하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번주는 백성의 부모란 뜻이다. 굶주리는 자식을 두고 부모만 호의호식하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우에스기 요잔은 높은 연봉을 포기하고 스스로 쟁기를 들어 논을 갈고 밭을 일구는 모범으로 이런 난국을 헤쳐나갔다. 일본이 성공한 것은 청부(淸富), 곧 깨끗한 이윤을 긍정하는 정신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당하게 일을 해서 버는 이윤은 아름다운 것이고 그것은 세상을 위해 다시 쓰여야 한다. 이윤을 밝히면 탐욕에 빠지기 쉬운 법이니 청빈하게 살아야 한다. 일본의 자본주의 윤리가 다시 보이는 때가 아닐까?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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