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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망령된 고론으로 대국에 의지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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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16 22:10:46 수정 : 2016-05-16 23: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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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위기에
재편되는 국제질서
트럼프의 신고립주의는
피할 수 없는 역사 흐름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애걸의 역사’는 반복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 후보의 입은 거칠다. 그의 막말 도마에 오르지 않은 것이 드물다. 여성 비하는 아무것도 아니다. 미국 이익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막말 수모를 겪는다. 무슬림, 멕시코, 중국이 모두 당했다. 동맹국이라고 봐주는 법도 없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도 미국이 상관할 바 아니다.” 그가 대통령 되는 날에는 날벼락을 맞을지도 모르겠다.

막말은 표를 그러모으는 요술 방망이일까. 공화당 주류조차 트럼프에게 줄을 대기 시작했다. 합리주의는 어디로 사라지고, 우아한 표현은 어디에 내동댕이쳤을까. 막말은 왜 먹혀드는 걸까.

강호원 논설위원
미국인에게는 악몽 하나가 있다. 87년 전 갑자기 닥친 대공황. 1929년 10월28일 뉴욕 다우존스지수가 폭락했다. 다음날에도 또 떨어졌다. 이틀간 하락폭은 25%. 그것이 끝이 아니다. 11월13일 또 45%가 내려앉았다. 하루아침에 재산을 날리고, 빚만 남았으니 ‘거지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는 이런 말을 남겼다. “발밑의 땅이 꺼져 버렸다.”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며 식료품 가게 앞에 긴 줄을 선 초라한 몰골의 가장들. 그것은 떨치기 힘든 기억이다.

그때의 악몽은 되살아나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 지금은 아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부도 이후 모든 것은 달라졌다.

빚을 보면 답이 보인다. 2008년 미국의 국가부채는 10조6000억달러. ‘부채시계’가 알리는 미국 국가부채는 16일 19조2664억달러로 불어났다. 원화로 환산하면 2경2695조원이다. 기준이 조금 다르지만 5월 초 우리나라 국가채무 613조원과 비교하면 37배를 웃돈다. 미국의 경제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그렇게 큰가. 양적완화로 돈 가치가 떨어졌지만 빚은 줄기차게 늘어났다.

망하는 나라에는 공통점이 있다. 빚이 불어난다. 어느 나라 역사를 놓고 봐도 해체기에는 재정이 파탄나고 빚은 늘어난다.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면 조그마한 충격에도 체제는 요동친다. 그 결과가 왕조의 몰락이며, 국가의 멸망이다. 미국이 그런 길을 걷고 있는 걸까. 꼭 그렇게 말하기는 힘들다. 미국만 빚더미에 올라앉은 것은 아니니. 하지만 빚더미 경제의 내부가 시퍼렇게 멍들었을 것은 너무도 빤한 일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많은 미국 중산층은 몰락했다고 한다. 차압당한 집 주인은 바로 중산층이다. 집값이 올라 괜찮아졌을까. 7∼8년 사이에 좋으면 얼마나 좋아졌을까.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트럼프가 외치는 신고립주의는 대공황 악몽을 떠오르게 하는 ‘흔들리는 경제’를 배경으로 탄생한 구호다. 트럼프의 인기는 막말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변화를 읽어야 한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 대통령이 되면 그의 생각은 바뀔까.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왜? 미국은 제 코가 석자이기 때문이다. 돌이키기 힘든 경제난에 미국인의 생각도 바뀌고 있다. 퓨리서치의 설문조사에 그 실상은 잘 나타난다. 미국인 57%가 “미국 자체 문제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2002년 이 비율은 30%였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 달라질까. 그러기 힘들 것 같다.

고립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것은 시간문제 아닐까. 세계질서는 변하고, 동아시아 역학 구조도 변한다. 세계 경제위기가 불러온 역사적인 변화다.

우리는 대비하고 있는가. 쓰잘머리 없는 이념과 탐욕이 눈을 가리고 있다. 닥쳐올 위기에 대비한다면 19대 국회처럼 ‘모든 것을 내팽개친 정쟁’을 이어갈 수 없는 일 아니던가. 정치만 그런가. 곳곳이 마찬가지다.

성호 이익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는 고려 때부터 망령된 고론(高論)을 내어 외구(外寇)가 침략하면 대국의 힘에 의지하고, 그렇지 않으면 형세가 궁해 애걸하는 수밖에 없었다.” 만신창이 조선을 두고 한 말이다. 이런 말도 했다. “고혈을 짜는 데는 범처럼 활개치고, 당로(當路)에 쓰이기 위해서는 여우처럼 애교를 부리고, 큰 적을 만나면 쥐처럼 숨으니 어찌 어모(禦侮)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다를까. 똑같다. 의지하는 체질이 닮았고, 힘 기를 생각은 하지 않고 편당을 지어 권력을 탐하는 것이 빼닮았다. 미국이 흔들리면 우리는 망해야 하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힘을 다하지 않는 자를 지켜줄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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