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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품있는 정취 선비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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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20 10:00:00 수정 : 2016-05-19 21: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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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참맛 느끼게 하는 강릉 선교장
강원 강릉의 선교장에 들어서면 연못과 활래정이 여행객을 맞는다. 활래정은 정자 건물의 반이 연못에 뿌리박은 돌기둥 위에 세워져 있고, 물 위에 떠 있는 누마루와 온돌방, 다실로 구성돼 있다. ‘활래’는 강릉 서편의 태장봉에서 내려오는 물이 연못을 거쳐 경포호로 빠져나가 항상 맑음을 유지한다는 데서 따왔다. 활래정에 앉아 보이는 연못과 산의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하게 한다.
우뚝 선 나무기둥과 우아하게 휘어진 기와지붕으로 대표되는 한옥. 여기에 뒤로는 기골 장대한 소나무들로 이뤄진 숲이 있고, 앞에는 호수와 아담한 정원을 갖추고 있는 한옥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 풍광에 푹 젖어들고 싶어진다. 팍팍한 삶과 거리를 두고 이런 매력을 갖춘 곳에서 하루를 머문다면 더 이상의 ‘힐링’이 없을 듯싶다. 한옥은 외국의 오래된 성이나 저택 등이 주는 분위기와 다른 여유를 준다.

이런 의미에서 강원도 강릉의 선교장은 한옥의 매력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세종대왕의 형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1692∼1781)이 1703년 안채를 지은 후 10대에 걸쳐 활래정,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열화당, 중사랑채 등 30여채의 건물을 증축해 지금에 이르렀다.
강원 강릉의 선교장은 조선시대 한양 사대문 밖에서 가장 큰 한옥이었다고 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세종대왕의 형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이 1703년 안채를 지은 후 10대에 걸쳐 활래정,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열화당, 중사랑채 등 30여채의 건물을 증축해 지금에 이르렀다.

선교장은 조선시대 한양 사대문 밖에서 가장 큰 한옥이었다고 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경포호가 집 앞까지 이어져 배로 다리를 놓아 건넜다고 해 ‘배다리(선교·船橋)마을’ 또는 ‘배다리집’으로 불렸다. 둘레가 12㎞에 이르렀던 경포호는 지금은 4㎞로 줄어 선교장과 연결된 예전과 같은 모습을 찾을 순 없지만 선교장의 풍광은 여전하다.
 
선교장에 들어서면 네모난 형태의 연못을 마주친다. 연못을 끼고 오른쪽으로 걸으면 월하문(月下門)에 이른다. 너비가 2m 남짓한 작은 문에는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들고), ‘승고월하문’(僧鼓月下門: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이란 시가 걸려 있다. 저택이란 표현이 맞을 정도로 집 규모가 크다 보니 묶을 곳을 찾던 나그네가 발길을 돌리까 봐 문을 작게 만들어 망설이지 않고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월하문을 통해 들어서면 연못 위 정자 활래정(活來亭)에 이른다. 활래정은 정자 건물의 반이 네모난 연못에 뿌리박은 돌기둥 위에 세워져 있고, 물 위에 떠 있는 누마루와 온돌방, 다실로 구성돼 있다. ‘활래’는 강릉 서편의 태장봉에서 내려오는 물이 연못을 거쳐 경포호로 빠져나가 항상 맑음을 유지한다는 데서 따왔다. 여름이 되면 연못의 연꽃들이 만발해 활래정에 앉아 보이는 연못과 산의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를 떠오르게 한다.
강원 강릉 선교장의 건물들을 연결하는 문들.

활래정을 지나 선교장의 본채 건물에 이르면 전면 행랑채에 두 개의 문이 있다. 신선이 기거하는 그윽한 집이라는 ‘선교유거’(仙嶠幽居)란 현판이 걸려 있는 솟을대문은 남자만 드나드는 곳이다. 여자와 하인은 평대문으로 드나들었다. 솟을대문에서 오른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선교장 최초로 지어진 안채가 있다. 종부(안방마님) 거처로 집 규모에 비해선 소박하다. 안채의 오른편에 집안의 여자들과 여자 손님이 거처하던 동별당, 왼편에는 남자들의 서재로 사용되었던 서별당(西別堂)이 이어져 있다. 
강원 강릉 선교장의 중심인 열화당. 바깥주인이 기거하는 사랑채로 툇마루 앞에 한옥과 어울리지 않는 철제로 된 지붕이 있다. 구한말에 선교장에 머물렀던 러시아 공사관 직원들이 후한 대접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신식 지붕을 지어준 것이다.

솟을대문 왼편으로는 선교장의 중심인 열화당(悅話堂)이 나온다. 열화당은 바깥주인이 기거하는 사랑채로, ‘일가친척이 이곳에서 정담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뜻을 담고 있다. 열화당에는 툇마루 앞에 한옥과 어울리지 않는 철제로 된 지붕이 있다. 구한말에 선교장에 머물렀던 러시아 공사관 직원들이 후한 대접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신식 지붕을 지어준 것이다.

건물 외에도 선교장에는 역사적 인물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선교장 곡식창고를 개조해 학교를 개설했는데 당시 몽양 여운형이 영어교사로 재직했다.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 들러 남긴 글귀 ‘홍엽산거’(紅葉山居)’도 전시돼 있다. 현재 서별당 등은 한옥스테이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경포호와 경포대가 멀지 않고 오죽헌, 참소리박물관 등 가족들과 들러볼 만한 곳도 인근이다.

강릉=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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