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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보다 아름다운 노랫소리… '카운터테너' 아시나요

입력 : 2016-05-22 20:31:26 수정 : 2016-05-22 22: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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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의 남자들’ 이동규·정시만·지필두 한자리에
훤칠한 남성 성악가가 무대에 선다. 입을 여는 순간 여성보다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여성의 소리라기엔 이질적이고, 소년의 것이라기엔 성숙하다. 한 관객이 헷갈려한다. “여자인가봐.”

미성의 이 성악가는 카운터테너. 남성이지만 메조소프라노에서 소프라노 음역대를 가졌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카운터테너 두 명이 최근 한 무대에 섰다.


국립오페라단이 2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아시아 초연한 비발디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초’에서다. 기사 아르질라노를 맡은 카운터테너 이동규(38)와 언더스터디(대역) 지필두(29), 그리포네 역의 정시만(33)을 LG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이들은 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카운터테너를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존재”라고 소개했다.

“카운터테너는 손에 잡히지 않는 매력이 있어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이끌어 내는 존재 같아요.”

카운터테너가 부각된 건 1970년대부터다. 이들은 카스트라토를 위해 쓰여진 오페라 배역을 대신했다. 카스트라토는 거세한 남성 성악가다. 맑은 보이 소프라노 소리를 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인기를 끌었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동규는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된 곡은 이후 여성이 해왔다”며 “1990년대까지 카운터테너는 극소수였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바로크 오페라를 거의 하지 않아 카운터테너를 접하기가 더 어려웠다. 국립오페라단이 바로크 오페라를 올린 건 그만큼 이들에게 의미가 크다. 이들은 까다로운 비발디 작품인 ‘오를란도…’를 바로크와 현대식을 잘 섞어 표현한 데 높은 점수를 줬다.

국립오페라단 ‘오를란도 핀토 파쵸’에 출연한 카운터테너 3인방. 왼쪽부터 정시만, 언더스터디(대역) 지필두, 이동규.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의 도전에 정말 감사해요. 제가 한국에 데뷔한 지 12년이 됐는데 카운터테너로서 기회가 너무 없었어요. 끽해야 행사 뛰고 협연하는 정도죠. 협연도 맨날 영화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를 불러 달라고. 사실 이 곡은 소프라노 아리아인데 말이에요. 저야 ‘파리넬리’ 때문에 카운터테너의 길을 왔지만요. 하하.”(이동규)

영화 ‘파리넬리’는 대중에게 카스트라토의 존재를 각인시킨 작품이다. 이동규 역시 미술을 할까 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고교 3학년 때 이 영화를 봤다. 그는 “야하다고 해서 봤는데 ‘울게 하소서’가 나오더라”며 “영화를 보자마자 생애 첫 클래식 CD를 샀고 아직도 보물처럼 갖고 다닌다”고 했다. 그는 이 음반으로 아리아를 연습해 캐나다 밴쿠버 음악 아카데미에 합격했다.

정시만·지필두가 카운터테너로 들어선 길은 사뭇 다르다. 정시만은 “그냥 고음이 났다”며 “원래 바이올린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했는데 교회에서 솔로곡을 불렀더니 음악하는 분이 ‘카운터테너란 게 있는데 한번 해보겠느냐’ 물었다”고 말했다. 3개월 레슨을 받은 그는 미국 매니스 음악대학에 합격했다. 지필두는 중학생 때 안드레아스 숄의 음반을 들으며 혼자 소프라노로 흥얼흥얼 연습했다. 변성기가 오고 음역이 낮아졌다. 교회 지인이 ‘네 목소리가 카운터테너’라고 알려줬다. 디자인을 전공하려던 그는 24살에 음대로 진학하며 진로를 틀었다.

아르질라노의 이동규
이동규는 돈을 벌려고 18살부터 프로 무대에서 노래했다. “콩쿠르도 밥 먹듯 다녔다”고 한다.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기획사나 오페라극장 관계자가 심사하는 콩쿠르를 노렸다. 그 결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 로마 무지카 사크라 국제 성악 콩쿠르, 스페인 비냐스 국제 성악 콩쿠르, 영국 BBC카디프 국제콩쿠르 등 숱한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동양인으로서 벽을 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는 “2000년에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에서 임선혜 누나와 제가 결선 12명에 들었다”며 “나중에 콩쿠르 결선 음반을 보니 저와 누나만 빠져서 항의한 적이 있다”고 했다. 정시만은 “많이 좋아졌어도 여전히 동양 가수가 몇 십 배 잘해야 쓰임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그리포네의 정시만
이동규는 국내에서 카운터테너의 길을 닦은 개척자이기도 하다. 2010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정시만은 이동규의 뒤를 잇고 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단단하고 맑은 음색으로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카운터테너는 여전히 낯설다. 이동규는 “제가 콘서트에서 노래하면 얘기할 때도 저런 목소리일지 궁금해들 한다”며 “관객에게 말하면서 진성을 내면 ‘어, 여자 목소리가 아니네’ 하는 반응”이라고 전했다.

카운터테너로서 어려움은 선입견이 아니라 공연 기회가 고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일단 극장 전속 가수가 되기 힘들다. 항상 오디션을 보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동규는 “바로크 지휘자들은 자기 가수에게 충실해서 마음에 드는 성악가 그룹만 쓴다”며 “지휘자에게 많이 어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무대에 설 기회가 드물어서 한국에서 내내 살기 어려운 현실”을 아쉬워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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