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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 청심청담] 예술과 사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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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23 18:01:51 수정 : 2016-05-23 18: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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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예술은 사기다’ 발언
창조적 거짓에 대한 역설
가수 조영남 대작 파문은
‘사기는 예술’로 오도할 우려
그림을 딴따라로 착각 말아야
대중가요 가수 조영남의 미술작품을 둘러싸고 컬렉터와 작가, 그리고 조씨의 작업을 도와준(조수인지 하청작가인지 불분명함) 송기창 화백 간의 공방이 법정소송에 들어가는가 하면 당국에서는 ‘사기죄나 저작권 위반죄’도 검토하고 있어 이슈가 되고 있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개념미술’을 들먹이면서 미학교수나 큐레이터 등 전문가들이 조씨를 두둔하는 발언을 하는 등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문화적 혼란과 함께 한국미술의 내홍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중가요와 클래식을 오가는 크로스오버 가수로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며 1960년대 명동 세씨봉 무대를 중심으로 청년문화운동(청바지문화)을 일으킨 주역이기도 한 조씨를 보는 필자로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분명 여기에는 조씨의 미술에 대한 개념이 불명확한 점도 작용했고, 지명도를 업은 미술시장의 상업주의와 타락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조씨의 이번 불상사는 세계 미술시장의 주변부에서 한때는 ‘미술부동산’의 개념으로 호황을 맞았던 한국 미술계가 그동안 작품 감정, 가격 결정, 작가 지원 등에서 자생력 확보에 소홀하다가 지금은 망하고만(세계미술시장에서 완전히 소외됨) 후유증의 여파로 볼 수 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최근 가수, 탤런트, 영화배우 등 대중예술가들이 여가활동으로 미술을 하면서 지명도에 기대 개인전시회를 열고 제법 고가로 작품이 거래되는 일화가 매스컴에서 연일 보도됐다. 기성 작가의 그림이 워낙 팔리지 않으니까 궁여지책으로 대중예술가에게 눈을 돌린 것이다. 그런데 이 분야의 개척자로 통하는 조씨가 돌연 법정공방과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조씨의 그림은 나름대로 창조적 아이디어와 소재 등에서 현대적 센스를 갖추었다는 평도 돌았다. 언론의 보도를 보면 조씨는 아직 사태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 미술전문가들이나 조씨를 둘러싸고 있는 예술인맥의 발언이나 훈수가 잘못 이끌어간 점도 없지 않다.

필자로서는 또한 백남준의 조수로 일한 적이 있다는 송 화백이 여기에 관계돼 있다는 사실에서 참담함마저 느낀다. 어떻게 백남준의 조수로 일한 작가가 이런 처참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드러나느냐 말이다. 상업주의에 오염되고 혼마저 빠져버린 한국 미술문화의 내홍과 위선과 주객전도를 폭로하는 대목이다.

‘굿으로 보는 백남준 비디오아트 읽기’를 집필한 필자로서는 이 소식을 접하며 대뜸 “예술은 사기다”라고 선언한 백남준의 일성(1984년 귀국기자회견)이 떠올랐다. 그의 발언은 다분히 선문답 식이었고, 창조적 거짓과 형식(형상)의 외피를 필요로 하는 예술의 진실에 대한 역설과 비약이 있었다. 백남준이라는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를 배출한 한국에서 유감스럽게도 자칫 잘못하면 ‘사기는 예술이다’라는 한국문화의 표피성과 천박함을 드러내는 함정에 빠질 위험성이 다분한 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우선 조씨가 직접 그린 것으로 생각하고 작품을 구입한 컬렉터에게 완전 환불해주어야 하며 미술에 임하는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미술은 대중가요와는 좀 다르다. 개념으로 이어지는 미술사가 있고, 개념을 개척한 작가를 ‘미술사적 작가’에 올려놓는다. 백남준이 바로 비디오아트와 레이저아트를 개척한 세계적 작가이다. 백남준의 ‘예술은 사기’라는 발언은 서양 미술사와 철학사를 완전히 꿰뚫고 인류의 미래문화와 미술의 갈길까지를 제시한 불세출의 경지의 반영이었다. 그는 인터넷을 앞서간 인터페이스 개념의 소지자였으며, 소통주의자·평화주의자였다. 백남준은 세계적 출세작 ‘굿모닝 미스터오웰’(1984)을 실현하기 위해 방송국과 네트워크에 진 빚(제작비 40만달러)을 갚느라고 죽을 때까지 빚에 허덕였다.

조씨가 행여라도 미술을 대중적 엔터테인먼트 정도로 여긴다면 자세를 바꿀 필요가 있다. 전문화가로서 먹고살기 위해 조씨를 도울 수밖에 없었던 송 작가를 생각하고, 한국미술시장과 한국사회의 위선과 폭력성을 함께 반성하면서 예술가로서 동지가 됐으면 한다. ‘백남준과의 만남’(2006년)도 조씨에게 주선했던 송 작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면서 서로 배우고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충고와 토론으로 함께 발전해나간다면 화가로서의 성공도 하나 더 붙게 될지 모른다. 만약 진지하게 미술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아마추어(취미)로 하고 프로 행세를 하지 말라. 잘못하면 미술시장만 오염시킬 염려가 있다. “‘시크’한 내 친구 윤형주가 지나가는 말로 방송에서 자기는 그림 안 주냐고 그래서 속으로 ‘와, 내가 그림에도 성공했구나’ 그런 걸 느끼고….” 발언은 솔직하지만 그의 현재를 드러내는 실언이다.

예로부터 정치와 예술이 닮았다고 하지만 주객전도된 양상은 예술계도 그대로다. 국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민주정치를 한다고 떠들어대니 무정부 상태가 되고, 미술시장을 부동산시장쯤으로 아는 국민들이 대부분이니 오늘날 미술시장이 황폐화돼 버렸다. 조씨 작품 사건은 한국 폭력무식사회의 빙산의 일각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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