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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피에타상 대리석 파편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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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23 21:37:13 수정 : 2016-05-23 21: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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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분리·파괴가 현대적 창조의 비법
AI에 밀려나는 인간, 껍질 취급 말아야
‘피에타’ ‘다비드상’ ‘최후의 심판’ 등으로 르네상스의 절정을 주도한 미켈란젤로, 그에게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느냐는 칭송어린 질문을 했을 때 그의 답은 간단했다. 대리석 안에 이미 그 형상이 있었고, 그것을 본 자신은 그 형상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모두 깎아내기만 하면 됐다고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낸 결과 잘 빚어진 조각품의 미학성이나 원석의 심연에서 그 형상을 직관할 수 있었던 창의적 발상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조각품의 잉여, 그러니까 피에타상을 빚어내는 과정에서 깎아내 버려진 그 많은 대리석 파편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문제에 관심을 보일 수도 있겠다. 바로 ‘쓰레기가 되는 삶들’의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 같은 이가 그런 경우다. “르네상스의 전성기에 미켈란젤로는 현대의 창조를 이끌게 될 계율을 선포한 셈이다. 쓰레기의 분리와 파괴는 현대적 창조의 비법이 됐다.”

근대 이전의 삶에서는 자원의 순환이 자연스러웠고 그만큼 쓰레기는 많지 않아도 됐다. 가령 농업의 경우 인간이 땅으로부터 얻은 씨앗과 거름을 땅으로 보내고 더 많은 곡식을 거둬 먹고살았으며, 그 잉여는 대부분 다시 땅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근대 이후 생산은 사정이 다르다. 자원의 순환 고리는 불가피하게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자동차를 오래 타다가 폐차하면 제아무리 고도의 기술을 발휘하더라도 원래의 자연 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쓰레기가 남게 마련이고, 그 폐기물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땅은, 지구는 그 쓰레기로 점차 병들어가고, 인간은 환경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쓰레기는 모든 생산의 어둡고 수치스러운 비밀이다”라고 한 사회학자 바우만의 진단은 적확하다.

바우만은 쓰레기 관련 환경 문제를 넘어 근대 이후 쓰레기처럼 잉여족으로 버려지는 사람의 생태에 관심을 집중한다. 생산의 현대화가 가속화되고, 하이테크 시대가 될수록 ‘쓰레기가 되는 삶’은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 많은 이들은 인공지능(AI)에 밀려 조만간 내줄 수밖에 없을 직업군·일자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거기에는 과학기술혁명과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초래되는 불가피한 부작용에 대한 불안이 담겨 있다. 점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에 대해 생각거리가 많다.

한국전쟁 후 피폐한 현실에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한 실존으로 헤매는 인간상을 소설가 손창섭은 ‘잉여인간’이라는 상징성으로 형상화한 바 있다. 손창섭의 잉여인간의 삶은 참으로 고단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는 어떤가. 바우만의 맥락에서 보면 더 많은 비율의 사람이 잉여인간으로 전락하는 실정이다. 굳이 청년실업이니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니 ‘삼포세대’(연예·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세대)니 ‘사오정’(45세 정년)이니 하는 음울한 상징어를 되풀이할 필요도 없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아서 밀러는 오렌지 속만 빼먹고 껍질을 버리는, 사람을 껍질 취급하는 그런 세태는 안 된다고 항의했다. 그래서 이 질문이 요긴하다. 피에타상을 빚어낸 대리석 파편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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