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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의창] 신록예찬, 그리고 광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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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24 21:50:09 수정 : 2016-05-24 21: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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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그린벨트… 수목·식물의 보고
역사·문화 살아 숨쉬는 왕릉답사 해보길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수필 중의 하나가 이양하 선생의 ‘신록예찬’이다.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접한 이래 해마다 5월이 되면 신록의 무성함과 향기를 예찬한 이 수필이 늘 머릿속에 떠오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에 녹엽이 싹트는 이때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산 저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신록예찬에서 묘사된 것처럼 5월의 신록은 우리에게 커다란 축복이다. 나아가 이양하 선생은 신록이 우리의 마음까지 정화시켜주는 고마운 존재임을 피력하고 있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 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 나의 모든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볕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이쯤 되면 5월의 신록을 찾아보고 싶은 욕망이 가슴에 맴돈다. 우리가 사는 주변 곳곳에 수목이 울창한 곳이 있지만, 수목이 무성하고 각종 나무와 식물이 다양하게 분포한 곳으로 손꼽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광릉(光陵) 인근에 위치한 국립수목원이다. 광릉은 조선의 7대왕 세조와 그 부인 정희왕후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국립수목원이 광릉 숲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은 조선시대부터 왕릉 주변에 금표(禁標)를 설치해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여 울창한 숲이 이곳에 일찍부터 조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판 그린벨트 지역이었던 셈이다.

광릉은 주변의 울창한 수목과 더불어 세조가 후손들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석실(石室) 대신에 회격(灰隔·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으로 왕릉을 조성하게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조는 왕릉의 위엄을 보이는 병풍석마저 설치하지 않게 해 왕릉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과 인력을 최대한 줄였다. 세조의 유언은 왕릉 제도에 변혁을 이루는 계기가 됐고, 이후 조선 왕릉의 모범이 됐다. 광릉은 동원이강릉(同原異崗陵·같은 언덕이지만 능선이 각각 다른 능)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왕릉은 우상좌하(右上左下·오른쪽이 높고 왼쪽이 낮음)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관람하는 사람 쪽에서 보면 왼쪽이 세조, 오른쪽이 정희왕후의 능이다.

이제 ‘찬란한 봄’을 상징하는 5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초록의 신록에 더해 역사와 문화가 담겨져 있는 광릉 등의 주변 왕릉 답사를 권한다. 무성한 신록 사이를 걷다가 만나는 품격 있는 왕릉의 모습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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