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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권력자의 고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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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27 21:54:59 수정 : 2016-05-27 21: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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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인 안톤 슈낙의 글은 슬픔이 물감처럼 묻어난다.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쪽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의 양광이 떨어질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하게 내리고, 그리운 이의 인적은 끊어져 거의 일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화창한 봄날에 학창 시절 국어책에서 읽었던 슬픈 글귀가 떠오른 것은 한 권력자의 쓸쓸한 부고를 접한 까닭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처남이자 이희호 여사의 막냇동생인 이성호 전 워싱턴DC 한인회장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는 서울 도심 오피스텔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 시신은 오피스텔을 방문한 지인에 의해 숨진 지 닷새쯤 지나 발견됐다. 그는 김대중정부 시절에 권력 실세로 통했다. 하지만 마지막 길에는 권력 주변을 기웃거리던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가족이나 친구마저 곁에 없었다. 주인을 기다리는 신문만 집 앞에 쌓였을 뿐이다.

그의 고독사가 가슴을 치는 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령화와 1인 가구의 급증으로 고독사는 갈수록 느는 추세다. 무연고자의 죽음만 5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을 정도다. 이웃 일본에서는 고독사에 대비하자는 보험상품까지 등장했다. 보험에 가입하면 방 1개당 월세 300∼500엔에 시신 처리와 유품정리를 해준다고 한다. 일본처럼 보험상품이 해결책일 수는 없다. 마지막을 따뜻이 배웅하는 사회적 연대가 물론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죽음의 당사자인 자신의 준비가 더 중요하다. 그런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우물쭈물하다가는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경구처럼 고독사는 어느 순간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준비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항상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떠올렸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되뇌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 그런 성찰을 통해 누구보다 열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죽음은 그에게 최고의 스승이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시집 ‘기탄잘리’에 이런 글을 남겼다. ‘신이 어느 날 문득 죽음의 광주리를 우리 앞에 내밀었을 때 우리는 과연 그 광주리에 무엇을 담아놓고 세상을 떠날까?’ 타고르가 던진 질문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오늘이다.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인간이 ‘정원 한쪽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신’처럼 쓸쓸하게 생을 마감할 수야 없지 않은가.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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