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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와 만납시다下] 현충원 묘비를 닦은 소녀…父 묘비를 바라본 아들

입력 : 2016-05-28 08:00:00 수정 : 2016-05-27 18:4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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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에 자리한 국립서울현충원은 지난 1955년 설립한 국군묘지가 뿌리다. 1996년 국립현충원으로 명칭 변경 후, 국립묘지와 혼용했다. 용어사용 문제가 제기되자 검토 끝에 2006년 국립현충원으로 이름을 확정했다.

국군 창설(1948년) 후 여순반란사건과 공비토벌작전에서 전사·순직한 장병을 서울 장충사와 부산 금정사와 범어사에 임시 안치했다. 6·25전쟁 전사자 증가로 묘지 문제가 대두하자 서울근교에서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 현재 자리에 국군묘지가 세워졌다. 국립서울현충원 역사의 한 페이지다.

이곳에는 국가원수묘역, 애국지사묘역, 국가유공자묘역, 군인·군무원묘역, 경찰관 묘역 그리고 외국인묘역 등 6개 묘역이 있다. 위패봉안관, 무후선열제단, 충혼당 등 3개의 봉안시설도 자리했다. 묘소에 5만4000여위(位), 충혼당에 1만여위 등 총 17만여위 영혼이 현충원에 잠들었다.

 

5월27일, 서울 구암고등학교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위해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자, 8반은 저쪽으로!”

남녀 학생들이 30번대 묘역과 40번대 묘역 사이로 뿔뿔이 흩어졌다. 수돗가에 걸레를 든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이더니 제각각 묘비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 27일, 서울 구암고등학교 학생들이 현충원을 찾았다. 한 학년만 온 게 아니다. 1, 2학년 그리고 3학년까지 왔다. 모두 봉사활동을 위해 현충원을 방문했다.

구암고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재람(17) 양은 현충원 봉사활동이 두 번째다. 지난해 풀을 뽑았다던 재람 양은 “묘비도 닦고, 화분도 정리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수줍게 걸레를 쥔 손이 눈에 들어왔다.

재람 양은 “2년 연속 (봉사활동을) 하니 뿌듯해요”라고 미소 지었다. 30℃에 육박하는 날씨가 더웠지만, 묘비에 적힌 전사자 이름과 유족이 놓고 간 액자와 꽃에 뭉클하니 더위는 금세 잊은듯했다.

 

지난해 풀을 뽑았다던 재람 양은 “묘비도 닦고, 화분도 정리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수줍게 걸레를 쥔 손이 눈에 들어왔다.



재람 양은 “내년에도 오지 않을까요?”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3학년도 여기 와 있어요”라며 “1, 2, 3학년 전부”라고 말했다.

김민정(17) 양은 봉사동아리에서 활동 중이다. 매년 현충원에 왔다던 민정 양은 “나라를 위해 싸우신 분들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됐다”며 “기분이 차분해지고, 역사를 되짚게 됐다”고 현충원 봉사활동 의미를 설명했다.

 

민정 양은 “나라를 위해 싸우신 분들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됐다”며 “기분이 차분해지고, 역사를 되짚게 됐다”고 현충원 봉사활동 의미를 설명했다.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물으니 재람 양이 입을 열었다.

“어른들도 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거의 학생이나 유가족분들만 오시잖아요. 일반인 분들도 많이 오셔서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걷고 걸어 10번대 묘역에 접어들었다. 멀리 두 사람이 보였다. 6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입을 굳게 다물고 묘비 주위에 술을 뿌렸다. 돗자리에는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들은 묘를 돌보더니 10여 분 후 일어섰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남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경기도 용인에서만 왔다고 했을 뿐, “할 말이 없어 미안하다”며 쓴 미소를 지었다.

남성은 잠시 발을 멈추더니 “아버지를 뵈러 왔다”고 말했다.

부부가 떠난 후, 살펴본 묘비. ‘육군상병 박○○의 묘’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강원도 철원 지역 금화지구에서 전사했다. 전사 날짜로 보니 6·25 전쟁 중 산화한 게 분명했다.

남성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문득 어떤 장면이 머릿속에 스쳤다.

새색시를 두고 6·25 전쟁 때문에 집을 떠나야 했던 남편.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며 홀로 아들을 키운 엄마. 그리고 단 한 번도 아버지를 보지 못한 채 자라온 아들. 영화를 많이 봤다는 말을 들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이게 현실 아니었을까.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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