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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자료·통계 토대 범인과 고도의 두뇌싸움… 사건 실마리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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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28 06:00:00 수정 : 2016-05-28 02: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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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좇는 프로파일러들
울산 봉대산에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매캐한 연기가 주변으로 퍼졌다. 벌써 17년째 잊을 만하면 나는 산불이다.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불안과 원성도 대단했다. 누가, 왜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걸까. ‘봉대산 불다람쥐’라는 이름이 붙은 연쇄 방화범에게 걸린 포상금은 3억원까지 뛰어올랐다.

5년 전 경찰은 사건 해결을 위해 프로파일러를 투입했다. 프로파일러가 비교적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는 최근 4년치 25건의 화재를 분석해 보니 발생 시간대와 지역 등에서 일정한 패턴이 발견됐다. 데이터베이스에 나타난 기존 방화범죄의 특징과 비교했을 때 ‘젊은 층은 아닐 것’이라고 판단됐다. 그 결과 ‘A지역 인근 거주자로서 B지역에 직장이 있는 40대 이상’이 우선 수사대상으로 떠올랐다.

경찰이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과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샅샅이 뒤진 끝에 붙잡은 김모(당시 51)씨는 프로파일링 결과와 거의 일치했다. A지역에 살며 B지역 대기업에서 일하던 김씨는 “가정문제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산불을 냈고 진압과정을 지켜보며 쾌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영화나 드라마, 추리소설 등을 통해 프로파일러의 세계를 접한 대중들은 주로 이런 연쇄범죄 용의자를 추리하는 활동을 떠올린다. 실제 프로파일링 기법이 개별 사건에 적용된 출발점도 1888년 영국 런던에서 5명의 성매매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잭 더 리퍼’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법병리학자는 피해자의 상처를 분석해 ‘살인범은 인체해부학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경찰 프로파일러의 세계는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경찰청 신상화 프로파일러는 “대중의 이미지 속 프로파일러처럼 사건 현장을 보자 마자 바로 범인상을 추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건 자료와 통계를 분석하는 업무가 수반된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이주현·이상경 프로파일러는 “프로파일링은 수사기법 중 하나일 뿐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며 “CCTV 분석 등 다른 다양한 수사기법을 활용하는 현장 수사팀의 노고가 있기에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프로파일러들은 ‘수사방향의 제시’라는 큰 틀에서 범인상 추정은 물론 △진술분석 △용의자 신문전략 수립 △범죄행동분석(심리면담)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신 프로파일러는 지난 1월 경기도 부천에서 발생한 초등생 아들 시신 훼손·냉동보관 사건에 투입됐다. 주범인 아버지가 아직 붙잡히지 않은 가운데 범행 가담 정도와 당일 행적 등에 관한 어머니의 진술은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와 상당히 어긋나던 상황이었다. 심리면담을 통해 그 이유가 밝혀졌다. 어머니는 의존도가 높았던 남편이 검거되면 홀로 남겨져야 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상태였다. 그래서 범행 내용을 축소하려 하고 남편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신 프로파일러는 “면담을 통해 파악한 피의자의 특성과 심리적 역동, 회피성 진술을 반복하는 이유 등을 수사팀에 전달해 실제 신문 과정에서 정확한 진술(자백)을 이끌어내도록 돕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2년 전 ‘제주 카지노 중국인 관광객 사기도박 사건’에서는 핵심 진술을 분석하는 데 프로파일링 기법이 활용됐다.

중국인 C(당시 49)씨가 카지노에서 11억여원을 땄는데도 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자 카지노 측이 오히려 C씨가 딜러와 공모해 사기도박을 했다고 반박한 사건이었다. 경찰 프로파일러는 사건 공모·수행에 관한 딜러 진술에 논리적 허점이 있고 진술 태도가 급변한 점을 간파했다. 수사팀은 이를 토대로 딜러를 강하게 추궁한 결과 카지노 측이 C씨에게 돈을 주지 않으려고 딜러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한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이 이 같은 프로파일링 기법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유영철 사건 등 돈과 치정, 원한 등 전통적인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 동기 범죄’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면서다.

2000년 과학수사 경험이 풍부한 경찰관에게 범죄분석 업무를 맡기기 시작한 경찰은 2006년부터 전문 프로파일러를 경장으로 특별 채용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심리학·사회학 석·박사학위 소지자들인 프로파일러들은 현재 31명이 일선에서 활동 중이다.

하지만 미 연방수사국(FBI) 행동과학부 등 외국 수사기관의 프로파일링 시스템과 비교하면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총경급 한 경찰관은 “물증이 없고 아무리 탐문수사를 해도 단서가 안 나와 수사가 오리무중에 빠질 때, 아니면 용의자가 입을 꾹 닫고 있을 때 다양한 강력사건 분석 경험을 가진 프로파일러들이 제시하는 수사방향이나 신문전략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보다 많은 프로파일러를 채용해 여러 사건에 투입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 범죄환경의 특성을 고려해 보이스피싱 등 다양한 범죄 분석을 기반으로 추가 범죄를 예방하고 정책 수립의 근거를 제시하는 쪽으로 프로파일링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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