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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업] 안전 대신 여성미 강조한 배트걸, 누굴 위한 걸까

입력 : 2016-05-28 06:00:00 수정 : 2016-05-27 21: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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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에서 27.43m는 베이스 간 거리입니다. 이는 타석과 더그아웃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한 경기에서 타자들이 놓고 간 방망이를 줍기 위해 더그아웃에서 대기하는 경기 보조 요원이 뛰어야 할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요. 9회 말까지의 아웃카운트 수 54개와 왕복 거리를 계산하면 약 3㎞를 전력으로 뛰어야 합니다. 요즘 같은 ‘타고투저’ 시대에 타석 회전율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거리는 훨씬 늘어납니다.

프로야구 넥센의 배트걸 권안나가 목동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다. 스포츠월드 자료사진
체력뿐 아니라 안전 문제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헬멧 하나에 의존해 그라운드를 누비다 보니 야구 장비나 공 등이 날아온다면 무방비나 다름없죠. 보조 요원과 관련한 끔찍한 사고는 지난해 8월 미국에서 벌어졌습니다. 아마추어 야구 경기 도중 9살짜리 배트 보이가 방망이에 머리를 맞아 끝내 숨졌습니다. 타자가 삼진 아웃을 당하자 그라운드에 떨어진 배트를 집어 들고 대기타석 쪽으로 뛰어오다가 몸을 풀던 한 선수가 휘두른 배트에 머리를 강타 당한 것이죠. 국내에선 아직 사고 사례가 없지만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야구장에서 취재를 할 때마다 불편한 궁금증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남성도 힘들어하는 일을 도맡는 경기 진행 요원 ‘배트걸’들은 왜 치어리더 못지않은 가냘픈 몸매에 아리따운 미모를 자랑할까요. 그것도 실루엣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딱 붙는 옷이나 타이즈를 입고서 말입니다. 실제로 관객들 중에는 일부 배트걸에게 노골적인 환호와 휘파람을 보내는 사람도 종종 보입니다. 이들을 ‘요원’이 아닌 예쁜 ‘여성’으로 간주하는 일부 관중 탓에 배트걸의 노고는 한낱 눈요깃거리로 전락하고 맙니다.

프로야구 LG의 배트걸이 잠실구장에서 열린 kt와의 경기에서 배트를 치우고 있다.
스포츠월드 자료사진
‘배트걸은 왜 예쁜가’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모 구단 관계자는 구단 치어리더나 치어리더 지망생이 지망을 하면 그 중에 선별하여 배트걸을 뽑는다고 말했습니다. 배트걸 선발 기준의 첫째가 ‘미모’라는 점을 스스로 고백한 꼴이죠. 배트걸의 애로사항에 대해 묻자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어엿한 경기의 일원인 배트걸을 구단 관계자가 보살피기는커녕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프로야구 구단은 각각 4∼6명의 보조 요원을 두고 있는데 이 중 여성 진행요원을 주로 경기장에 투입하는 구단은 LG, KIA 등을 포함해 6개 구단입니다. 반면 두산, 삼성, 한화, NC 등 4개 구단은 ‘배트보이’를 구장에 투입합니다. 두산 관계자는 “좀 더 빠른 경기 진행과 요원들의 안전 문제를 고려해 OB 시절부터 전통적으로 배트보이를 고집한다. 용역 업체에서 체력 등 진행 능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선발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2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LG와의 경기에선 두산 측 2명의 건장한 배트보이가 그라운드를 분주히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안병수 기자
여성이라고 해서 거친 그라운드에 들어올 수 없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물리적으로 힘겨운 일인 만큼 배트걸에게 보다 섬세한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무릎 보호대 등 보다 많은 안전장비를 착용하게 하는 대신 경량급의 장비를 제공해 부담을 최소화하거나 ‘야구’ 진행 요원다운 유니폼 복장을 입게 하고 구단 측에서 체력 관리를 적극적으로 해주는 것들 말입니다. 배트걸의 노고를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일도 그들의 땀방울을 보다 빛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적어도 이러한 노력들은 안전보다 여성미를 강조한 복장으로 배트걸을 내보내 화제를 끄는 것보다는 훨씬 의미 있는 일일 겁니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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