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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이 된 은행원 "우리도 죽을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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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28 10:12:38 수정 : 2016-05-28 10: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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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그렇게 많이 받으면서 엄살은...”, “은행원 절대 편들어주지 마라”

은행의 실적 압박 등 은행권 관련 기사에는 어김없이 은행원을 욕하는 댓글이 달린다. 대다수는 은행원을 ‘편하게 일하면서 일찍 퇴근하고 월급은 많이 받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지난해 10월 최경환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후 4시에 은행 문 닫는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는 말을 했을 때 이 발언을 통쾌해하는 사람이 상당수였다는 사실이 여론을 방증한다.

최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불완전판매 논란과 금융권 성과연봉제 도입 움직임으로 은행원이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은행원들을 ‘실적을 위해 불법도 서슴지 않는 집단’, ‘성과주의 도입으로 철밥통을 깨뜨려야 하는 사람들’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은행원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이 주류다. 다른 업종에 비해 연봉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적압박, 감정노동 등에 놓여있는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삼성전자보다 연봉 많은 곳도

은행원들이 고연봉을 받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에 각 기업이 올린 사업보고서를 보면 KB금융그룹은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이 1억900만원이다. 신한금융그룹은 1억800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SK텔레콤(각 1억100만원), 기아자동차·에쓰오일(각 9700만원), 현대자동차(9600만원) 등 연봉을 많이 주기로 알려진 대기업들보다 많다.

대졸 신입사원 초임도 신한은행 5500만원, 우리은행 5100만원, 국민은행 4900만원, KEB하나은행 4800만원으로 5000만원 안팎이다. 보통 중산층을 분류할 때 기준이 되는 연봉(5000만원)을 신입사원 때부터 받는 것이다.

◆“많이 받는만큼 많이 일한다”

은행원들은 일하는 양을 생각하면 많이 받는다는 비난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5년차 은행원 A(32)씨는 오전 7시30분까지 출근해 오후 8∼9시가 돼야 퇴근한다. 하루에 12∼14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오전 8시부터 시작하는 회의에 늦지 않으려면 이른 출근은 필수다. 마케팅 회의, 실적 점검 회의 등 회의가 없는 날이 거의 없다. 은행 문은 오후 4시에 닫기 때문에 은행원이 ‘칼퇴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은행원들은 이구동성으로 “4시 이후부터 진짜 업무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영업을 시작하면 A씨는 밀려드는 일 때문에 넋이 나갈 때가 많다. 고객은 앞에 앉아있는데 전화벨이 울리고 컴퓨터 모니터에는 끊임없이 업무 관련 메시지가 뜬다. 뒷줄에 앉은 간부들은 계속해서 업무지시를 한다. 일에 휘둘리다보면 가끔 눈앞이 하얘지는 경험도 한다.

보통 회사원들은 점심시간이 1시간 가량 주어지지만 은행원은 그렇지 않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는 오후 2∼3시에 식사를 하는 일이 다반사고 밥만 먹고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지점으로 와야한다. A씨는 “밥을 거의 마시다시피 한다”며 “끼니를 거를 때도 있다”고 말했다.

원래 부담이었던 실적 압박은 최근에 더 심해졌다. ISA, 계좌이동제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는 상품을 팔아야 할 때면 자괴감도 느낀다. 은행에 1년 정도 다니다가 다른 업종에 재취업한 B(31)씨는 “고객에게 사기를 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워서 그만뒀다”고 털어놨다.

금융사고에 대한 불안감도 은행원들을 괴롭힌다. 자신이 취급한 대출 등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스트레스를 항상 안고 일해야 한다. A씨는 “대출자가 나를 속인 것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징계, 감봉을 당하고 심하면 돈을 물어내야 할 수도 있다”며 “열심히 일하던 동료가 종종 금융사고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사고가 나면 어떡하나’라는 불안감을 항상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법이 생길 정도로 극심한 감정노동

‘진상’ 손님 때문에 겪는 감정노동도 빼놓을 수 없는 은행원의 고충이다. 주로 창구에 앉아서 고객을 대면하는 은행원들에게는 하루에 수십 명이 찾아오는데, 이 중 악성 민원인이 적지 않다. 무턱대고 “이자를 깎아달라”, “환율우대를 해달라”는 고객들은 부지기수고, 여직원에게 반말을 하거나 무조건 “지점장 나오라고 해”라며 큰 소리를 치는 고객도 있다.

은행원들은 부당함을 느껴도 고객에게 항의할 수 없다. 고객이 만약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을 경우 인사고과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나중에 직원 잘못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도 민원이 들어갔다는 기록은 지워지지 않는다. 손님의 횡포에 꼼짝없이 당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은행 등 금융권의 감정노동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금융권의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 김기식 의원이 발의한 여신전문금융업법, 자본시장법, 보험업법, 상호저축은행법, 은행법 개정안이다. 이번 개정으로 각 금융업권이 적용받는 법에는 직원이 요청할 경우 금융회사는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직원을 분리하고 업무담당자를 교체한 뒤 직원에 대한 치료·상담 지원을 해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사가 감정노동을 하는 직원을 보호할 의무가 생긴 것이다.

오현태 기자 sht9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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