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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피해는 있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고?

입력 : 2016-05-30 05:00:00 수정 : 2016-05-29 10: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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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모(53)씨의 아버지 박모(83)씨는 5년 전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고도 자꾸 차를 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박씨는 몇 년 전부터 운전할 때마다 크고 작은 사고를 냈다. 가족과 의사가 '본인과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해 운전을 그만두라'고 했지만 오히려 역정만 냈다. 박씨는 집에 가겠다면서 부산에서 예전 집이었던 대전까지 운전하다 길을 잃기도 했다.

김씨의 아버지인 박씨가 만약 큰 사고를 내 사고 상대방에게 배상해야 한다면, 이는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김씨 가족이 져야 할까. 아니면 가족 대신 우리 사회 모두가 감내할 비용일까.

고령화 국가 일본에선 치매노인의 행동을 그 가족에까지 책임지게 할 수 있을지를 판단한 첫 판례가 나왔다. 일본을 뒤따라 늙어가는 한국에선 아직 유사 소송 사례가 없다. 당장 사고가 일어나도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법조계에선 빠르게 느는 치매 인구와 가족을 고려해 관련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치매노인의 행동, 가족이 책임져야 할까

최근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철도회사가 집을 나와 배회하다 전차에 치여 숨진 91세 치매환자의 아내와 장남에게 "운송지연 피해 등 720만엔을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1·2심을 뒤집고 가족에게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최고재판소는 치매환자처럼 책임질 능력이 없는 사람의 '감독의무자'가 치매환자의 행위를 배상토록 한 일본 민법 714조가 아내와 장남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아내와 장남에게 숨진 치매환자의 감독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소는 가족의 감독의무를 따질 때 △가족과 치매환자의 상태 △동거 여부 △재산관리 주체 △치매환자의 문제행동 전력 △간병실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에 치매환자의 장남은 20년간 별거했다는 이유로, 부인은 스스로도 요양 대상이란 이유로 감독의무·배상책임이 없다는 판단을 받았다.

감독의무를 규정한 일본 민법 714조는 한국 민법 755조와 유사하다. 민법 755조는 '미성년자나 심신상실자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혔으면 그를 감독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치매노인 부양의무 법적 근거 있나

국내에서 같은 소송이 제기될 경우 이 법을 치매환자와 가족에 적용할 수 있을 지가 쟁점이 될 걸로 법조계에선 보고 있다. 치매노인을 가족이 부양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따로 있지 않는 한, 배우자나 자녀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문제 전력이 있는 치매환자라면 동거 가족에게 감독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일본 최고재판소 판례가 시사점이 큰 이유는 한국의 치매 인구가 일본처럼 급증세이기 때문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치매환자는 12분당 1명씩 늘어나 64만800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노인인구 10명 중 1명 수준이다. 2010년의 47만4000여 명에서 5년 사이 17만여 명이 늘었다.

환자를 간호하는 가족 역시 배우자·자녀·손자를 포함해 260만명이나 된다. 이들에게 거동 가능한 치매환자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대부분의 치매환자 가족이 환자와 24시간 함께 있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가족에게 감독의무를 지우기는 쉽지 않지만, 가족의 책임을 부인한다면 “피해는 있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라는 모순에 빠진다. 한 가족의 치매환자가 발생시킨 비용을 사회 전체가 나눠 부담하는 것이다.

◆가족 공동체의 파탄 어쩌나

가족의 감독의무를 인정하면 치매환자에 대한 관리·보호가 한층 강화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이 치매환자 부양을 꺼릴 공산이 크다. 일본에서도 1·2심이 가족 배상책임을 인정하자 치매환자 보호자 단체가 "판결이 확정되면 어느 아들·딸이 치매부모를 모시려 하겠느냐"며 크게 반발했다. 사실상 가족 공동체의 파탄이다.

법조계는 일본에서 첫 판단 사례가 나온 만큼 국내에서도 유사 소송이 제기되는 것은 시간문제라 본다. 이에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치매환자의 법적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논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편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가 가족 얼굴을 못 알아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 얼굴 모습을 알아보는 전체지각(holistic perception) 기능이 손상됐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 노인 의학연구소의 스벤 주베르 박사는 치매 환자들과 건강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고 영국의 인디펜던트 인터넷판과 메디컬 뉴스 투데이가 최근 보도했다.

주베르 박사는 이들에게 얼굴과 자동차 사진들을 똑바로 또는 거꾸로 보여주면서 얼굴과 자동차를 식별하는 능력을 시험했다. 그 결과 사진을 거꾸로 보여주었을 때는 대답의 정확도와 정확한 대답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치매 환자나 정상인이나 비슷했다. 거꾸로 된 사진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눈이 지각하는 얼굴과 자동차의 여러 부분을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똑바로 세워진 얼굴 사진을 인지하는 데는 치매 환자들이 정상인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리고 잘못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얼굴 식별 문제, 기억 여부 아닌 ‘지각 능력’ 손상

이는 치매 환자의 경우 얼굴을 전체적으로 인지하는 전체지각 능력이 손상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베르 박사는 해석했다. 얼굴을 식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얼굴을 지각하는 능력이 손상됐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주베르 박사는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증상이 치매 초기 단계에 나타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알츠하이머병 학회 연구실장 제임스 피켓 박사는 치매 환자가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기억상실 때문만이 아닌 얼굴을 인지하는 능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일 수 있음을 인정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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