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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과 함께 울고 웃은 30년… 이젠 몸에 딱 맞는 옷 같아”

입력 : 2016-05-29 23:00:54 수정 : 2016-05-29 23: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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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문훈숙·김인희, 6월 10일 ‘심청’ 30주년 무대 53세의 두 발레리나가 무대를 꾸민다. 유니버설발레단(UBC) 문훈숙 단장과 서울발레시어터(SBT) 김인희 단장이 오랜만에 UBC 창작 발레 ‘심청’에 출연한다. 서곡이 흐르는 동안 중년의 심청이 돼 지난날을 회상한다. ‘심청’ 탄생 30주년을 기념하는 이벤트다. 공연은 내달 10∼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 문 단장은 2001년 토슈즈를 벗었다. 김 단장 역시 10년간 무대에 서지 않다가 지난해 10월 은퇴 공연을 가졌다. ‘너무 걱정된다’는 엄살을 예상하며 최근 두 단장을 만났다. 이들은 기대를 배반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연습은 크게 안 해도 된다”고 했다.

“걸어가면서 ‘아 맞아’ 이런 느낌을 내면 돼요. 대례복 입고 고무신을 신어요. 다리 올리고 돌고 하는 게 없어서 괜찮아요.”(문훈숙)

이들이 여유만만한 이유 중 하나는 셀 수 없이 ‘심청’을 추었기 때문이다. 문 단장은 30년 전인 1986년 ‘심청’ 초연 무대에 섰다. 김 단장 역시 “하도 심청을 많이 해 노래도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심청’은 ‘지젤’과 비슷해요. 연기, 음악성이 풍부하지 않으면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할 수 없어요. 역대 심청 주역 역시 이런 능력이 있는 무용수였어요. 그러니 이번에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을 거예요.”(문훈숙)

“무대에서 발레 해설하는 게 이번보다 10배, 100배 힘들어요.”(김인희)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왼쪽)과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 단장이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 앞에서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발레리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은 “우리는 호호할머니가 돼도 함께 즐거운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우정을 과시했다.
이재문 기자
문 단장은 지난해 김 단장의 은퇴 공연을 본 뒤로 더욱 신뢰가 깊어졌다. 그는 “공연을 보며 구관이 명관이라 생각했다”며 “기술은 요즘 무용수를 못 따라가지만 김 단장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느낌을 보며 ‘저건데, 저렇게 춤을 춰야 하는데’ 했다”고 말했다.

“(젊은 무용수들이) 콩쿠르를 많이 해서인지 테크닉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어요. 예술에서 테크닉은 기초, 수단이고 이 위에 다른 걸 더해야 하는데. 내 몸에서 음악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표현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이걸 고민하는 중에 김 단장의 무대를 봤어요. 그러니 걱정 없어요. 대례복 앞섶만 잠기면 돼요. 하하.”

한국 창작발레 ‘심청’의 3막 ‘눈뜨는 심봉사’의 한 장면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심청’은 역대 한국 창작발레 중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받는다. 기획은 UBC가 창단한 1984년부터 시작됐다. 과감한 시도였다. 당시 한국은 발레 불모지였다. 남성 무용수가 없어 인쇄소 직원과 연극배우를 훈련시킬 정도로 척박했다. 동서양 예술가들이 ‘심청’의 탄생을 위해 손잡았다. 안무는 UBC 1대 예술감독인 에이드리언 델라스가 짰다. 작곡은 케빈 바버 피커드가 맡았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실비아 탈슨이 의상을 만들었다. 대본은 최근 작고한 문화예술평론가 박용구가 썼다. 초연 2년 후 대대적으로 개작이 이뤄졌고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췄다. 김 단장은 이 작품의 첫인상에 대해 “기분이 참 좋았다”며 “그 전까지는 남의 옷을 빌려 입고 추는 느낌이었다면 ‘심청’은 비로소 우리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했다”고 회상했다.

“UBC 발레리나로 활동하면서 가장 좋았던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심청’이에요. 당시 아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말씀을 못하셨어요. 심봉사는 눈이 안 보이고, 우리 아빠는 말씀을 못하시니, 아빠와 만나고 돌아설 때마다 눈물이 펑펑 나왔어요.”(김인희)

문 단장은 당시 열악한 상황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부터 떠올렸다. 인당수에 빠지는 장면에서 발레리나가 2∼3m 높이에서 뛰어내려야 하는데 안전장치가 허술했다. 맨 땅에 꽝 부딪칠 것 같았다. 문 단장은 “공연을 이틀 앞두고 리허설을 하는데 우리 둘이서 뛰어내리지 못하고 덜덜 떨었다”며 “지나가던 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이 이렇게 뛰면 된다고 직접 시범을 보이다가 땅에 부딪혀서 갈비뼈에 금이 가고 안경이 깨지고 와이셔츠가 찢어졌다”고 아찔해했다.

불모지에서 꽃핀 ‘심청’은 발레 한류의 주역이 됐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해외 무대에 올랐다. 초반에는 일본과 동남아시아에 들렀다. 1998년 북미 순회공연을 시작으로 유럽·남미로 지역을 넓혔다.

“‘심청’ 해외반응은 항상 좋아요. 2001년 시카고시빅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할 때 동행한 한국 기자가 공연 5분 전에 찾아왔어요. 미국인들이 심청을 이해할지 걱정하더라고요. 3막 커튼콜할 때 깜짝 놀랐어요. 1층에 계신 관객이 다 서 있었어요. 잊혀지지 않아요.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할 때는 유명 흑인 발레리나인 버지니아 존슨이 찾아왔어요. 3막에서 주변 사람이 많이 울더라고 전해줬어요. 최근 대만에서 공연했는데 딸과 함께 보러 온 어머니가 ‘나는 한국 사람이 싫다. 그런데 심청을 보는 내내 춤, 무대, 의상 모든 곳에 정성을 쏟은 게 보였고 내용이 교육적이어서 너무 감동받았다. 지금껏 본 해외공연 중 가장 좋았다’고 후기를 남겼어요.”

문 단장은 “‘심청’이 신기한 게 이 작품에 최고의 안무나 화려한 무대 장치, 기발한 아이디어 같은 건 없다”며 “굉장히 아날로그한 작품임에도 왠지 모르게 늘 관객이 감동받는다”고 했다.

“음악이 참 좋아요. 좋은 뮤지컬, 영화는 보고 나면 멜로디가 흥얼거려지잖아요. ‘심청’이 그래요. 성공 이유 중 하나가 메인 테마곡인 것 같아요.”(김인희)

“해외에서도 공연 후 음반이 없는지 묻는 관객이 항상 있어요.”(문훈숙)

‘39년 지기’인 두 사람은 워낙 쌓인 추억이 많아서인지 밤새 수다 떨어도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들은 선화예술중학교 1학년 2반에서 만났다. 성격이 정반대였다. 김 단장은 오락부장이었고, 문 단장은 오락부장이 불러내면 두 손으로 책상을 잡고 안 나가려 버티던 소녀였지만 바로 친해졌다. 문 단장이 형편이 어려운 김 단장 몫까지 도시락 두 개를 싸올 만큼 막역했다.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도 함께 유학했다.

“사람들이 둘이 라이벌이라 힘들지 않으냐 묻곤 했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 가르쳐 줬어요. ‘난 이렇게 하니까 되는데 너도 해봐’ 이랬어요. 한 명이 안 되던 동작을 성공하면 옆에서 막 좋아해 줬어요. 친자매처럼 자랐죠. 안무가 허용순과 UBC 창단 멤버인 이인경을 포함해 우리 넷은 지금도 사총사에요. 새벽 세 시에 카톡으로 와달라 해도 뛰어나갈 걸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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