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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 ‘꼰대’들의 삶 다룬 황혼 찬가

입력 : 2016-05-29 23:00:17 수정 : 2016-05-30 07: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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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디어 마이 프렌즈’ 인기몰이
“요즘 누가 꼰대들 이야기를 돈 내고 읽어. 지들 부모 얘기도 관심 없어.” 드라마에서 37살 딸로 등장하는 고현정이 엄마 고두심에게 내지른 독설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런 ‘꼰대’들의 이야기가 인기를 얻고 있다.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얘기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첫회부터 시청률 4.9%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느 드라마에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꼰대’이지만, 이들이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이가 가장 많은 신구(80)를 비롯해 김영옥(79), 나문희(75), 김혜자(75), 주현(73), 윤여정(69), 박원숙(67), 고두심(65)까지 ‘디어 마이 프렌즈’에 등장하는 주인공 8명의 평균연령은 75세다. 이들의 연기 경력만 합해도 300년이 넘는다. 주연 배우 중 가장 어린 고현정의 나이가 45세다. 이쯤 되니 이 드라마는 ‘꼰대들의 드라마’라 불릴 만하다.

그러나 드라마 속 주인공이 ‘꼰대’라고 ‘꼰대’만을 겨냥해 만든 것은 아니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작가는 드라마를 위해 청춘들이 노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취재했다. ‘꼰대’를 비롯해 ‘불편’, ‘의무’, ‘부담’, ‘뻔뻔’, ‘외면’, ‘생색’, ‘초라’, ‘구질’, ‘원망’, ‘답답’ 등 청춘들이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마디로 ‘부정적’이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가 전 세대의 공감을 얻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tvN 제공
드라마는 부정적 시선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어디서 기인했을까.’, ‘청춘의 인색함일까.’, ‘역지사지는 못하는 걸까?’ 그리고 이런 시각들이 노인에 대한 이해와 정보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꼰대들이 꼰대가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극 중 8명의 노인들 가운데 가슴속 애환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망상성 치매기가 있다는 진단을 받은 조희자(김혜자)와 남편에게 구박받으면서도 세계일주를 떠나 길 위에서 죽고 싶다는 문정아(나문희), 남편에게 배신당한 뒤 이 악물고 버텨온 장난희(고두심), 나이 60이 넘도록 처녀로 살고 있는 오충남(윤여정)까지.

그렇다고 이들이 암담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삶의 무게에 무릎이 꺾이는 비루한 삶을 살더라도 끼니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밤이 되면 내일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드라마는 노인에 대한 판타지를 그리지 않았다. “이 나이 되면 밑이 헐거워져서 그냥 나온다”는 고두심의 대사는 능청맞으면서도 짠하다.

노인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는 ‘죽음의 문턱’이다. 드라마 속 초등학교 동문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참석자가 줄어든다. 완이(고현정)의 눈에 성질 못된 아저씨도, 같은 얘기를 백번 넘도록 반복하는 아줌마도 어느새 죽고 없다.

그러나 젊은 완이에게 이 같은 현실은 머나먼 이야기다. 딸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는 엄마의 말에 완이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답한다. 완이는 엄마와 어른들을 너무도 사랑하지만 ‘제발 나랑은 상관없이 혼자 알아서 행복해 줬으면 좋겠으니까’ 말이다.

드라마는 노인이 아닌 어른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노인이 청춘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닌, 친구 같은 관계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여기에 시청자가 기대할 만한 결말은 따로 없다. 그저 이 모든 과정을 차례로 보여줄 뿐이다. 마치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른 이들에게 순간의 행복을 강조하려는 듯 말이다.

극본은 ‘내가 사는 이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꽃보다 아름다워’ 등을 집필한 노희경 작가가 맡았다. 노 작가 특유의 살아 있는 표현은 잔잔한 감동과 재미를 더한다. 그는 “‘황혼 찬가’를 오래전부터 구상했지만, 어른들 이야기를 하지 않는 시대에 ‘디어 마이 프렌즈’ 같은 드라마를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젊은) 우리가 치열하게 산다고 하는 건 치열한 것도 아니다”며 “(노년은) ‘생로병사’ 중 ‘로병사’를 경험하다 보니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시기”라고 전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들은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소수계층이 아니다”며 “이런 드라마가 노인에 대한 이해를 도우면서 세대갈등을 해소하고 소통을 유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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