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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가씨' 이들의 사랑에 동의할 수 있겠어요?

입력 : 2016-06-01 06:50:00 수정 : 2016-06-01 08: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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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제작 모호필름/용필름, 제공/배급 CJ엔터테인먼트)는 네 남녀의 뒤엉킨 욕망의 판타지를 그린 작품이다. 박 감독 특유의 예술적인 미장센과 보편적인 인간성을 벗어난 캐릭터들이 144분간 휘몰아치듯 걷잡을 수 없는 매혹으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영국 작가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영국 빅토리아 시대 런던을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조선으로 옮겨와 그동안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국적이면서 아름다운 미장센이 완성됐다.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와 재산을 노리고 그녀에게 접근하는 사기꾼 백작 ‘후지와라’(하정우), 백작의 사주를 받아 히데코의 하녀가 되는 ‘숙희’(김태리), 그리고 아가씨의 후견인이자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 등 네 남녀의 이야기가 총 3부에 걸쳐 펼쳐진다.

동양과 서양 문물이 충돌하는 과도기였던 1930년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풍이 공존하는 대저택 속 각기 다른 의도와 목적을 지닌 인물들의 군상은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다. 찜찜한 '뒷맛'이 남지 않는 명확한 이야기와 박 감독의 표현 따라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는 방대한 대사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토리 면에서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보다 관객들의 흥미를 돋울 만한 대중성을 다분히 포함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처럼 하나의 사건을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는 구성을 통해 박 감독은 네 인물의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진실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관객들이 ‘반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점 등이 그러하다.

또한 극 초반부 히데코와 숙희가 감정을 나누고 확인해가는 과정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일본 귀족 출신인 히데코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유일한 혈육인 이모를 따라 한국에 왔지만 이모마저 세상을 떠나자 이모부 코우즈키의 손에 맡겨진다. 이름난 여도둑의 딸로 태어나 일본으로 팔려가는 갓난쟁이 고아들을 제 손으로 키워냈던 숙희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고고한 히데코를 마치 엄마처럼 보살핀다. 두 여인 사이 형성된 모성의 감정은 서서히 동성간의 사랑으로 발전한다. 



박 감독이 이 영화에서 페미니즘이나 여성 해방의 기치를 본격적으로 들어 올린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여성과 남성 캐릭터가 그로부터 전혀 다른 '대접'을 받고 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조진웅이 연기한 코우즈키나 하정우가 분한 후지와라는 둘 다 한국인이지만 이름을 바꾸고 신분을 세탁한 ‘가짜’ 일본인들이다.

이미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짓으로 점철된 이들은 신분상승이나 성욕해소와 같은 뒤틀린 욕망을 이루기 위해 여성을 하나의 도구나 전시품으로 이용한다. 가련하고 불쌍한 아가씨 히데코, 백작의 사주를 받긴 했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숙희의 관계가 단순한 동성애로만 읽히지는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성들이 굴욕을 당하는 대사나 상황은 묘한 웃음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유발한다.

굳이 네 남녀 주인공의 공통점을 찾으려 한다면 ‘억압된 어린 시절’일 것이다. 이는 혼란스러웠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윤리나 도덕의 부재, 그리고 상대를 속여야만 내가 살 수 있는 시스템을 정당화한다. 이는 마치 '게임'을 연상시킨다. 끝까지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야기 속에서 진짜 승자(?)는 누가 될지 지켜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김민희와 김태리의 동성 베드신은 다른 시점에서 두 번에 걸쳐 등장하는데 그 수위는 꽤나 높은 편이다. 그러나 지극히 남성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성적 판타지가 아닐지 내내 의문을 품게 되는 점은 아쉽다. 그녀들의 사랑에 진심으로 동의하는 관객이라면 이런 의문조차 품지 않게 되겠지만. 

기꺼이 '박찬욱 월드'에 입문해 겉으론 근사하지만 속으론 일그러진 인물들을 구현해낸 김민희, 하정우, 조진웅 등 배우들의 노력을 극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김태리는 신인답지 않은 ‘발칙한’ 연기로 첫 등장 만에 관객들의 마음을 제대로 호린다. '제6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및 벌칸상(류성희 미술감독) 수상작. 청소년관람불가. 144분. 6월1일 개봉.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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