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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윤석화, 60대 듀엣 '방황하는 청춘'을 연기하다

입력 : 2016-06-20 14:25:28 수정 : 2016-06-20 14: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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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 첫 호흡 “(연출자에게) 야단을 제일 많이 맞아요. 연출이 A를 요구하는 듯해 표현하니, 그게 아니라 B라고 해서 다시 하면 아니다 C라고 해요. 이러니 집에서 막 고민하는 거죠. 어느 날 너무 속상해서 어린 스태프들 앞에서 눈물이 터졌어요. 사표 쓰고 싶더라고요. 더 이상 브루클린으로 가는 비상구가 안 보였어요. 그래도 용기 내서 하는 거예요.”(윤석화)

“연습실 분위기가 얼마나 치열한지 알겠죠?” (유인촌)

올해로 60살, 40년을 연극에 바친 배우 윤석화가 연습하면서 “속이 상한다”고 한다. 듣고 있던 45년 경력의 배우 유인촌(65)이 “연습장은 원래 실수하는 데”라고 맞장구 친다. 무대 위 백전노장들을 진땀 흘리게 만든 작품은 내달 12일 공연하는 연극 ‘햄릿’이다. 고 이해랑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작이다. 이름만 들어도 묵직한 연극계 대배우들이 이 작품으로 뭉친다. 손진책 연출에 권성덕,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손봉숙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평균 연기경력이 46.8년이다. 유인촌이 햄릿, ‘막내’ 윤석화가 오필리아를 연기한다.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주연만 꿰차도 바쁠 다른 배우들도 1인 2, 3역씩 작은 역할을 열연한다.

연극 ‘햄릿’에서 각각 햄릿과 오필리아를 연기하는 배우 유인촌과 윤석화는 “산전수전 다 겪은 분들이 모였다”며 “이들이 대사를 뛰어넘어 자기 속에서 다 소화시켜 갖고 놀 정도로 하려고 연습에 불을 뿜는다”고 전했다.
남정탁 기자
눈감고도 술술 연기할 법한 이들이지만, 연습실 공기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뜨겁다. 매일 오후 1시30분에 시작하는 공식 연습은 밤 10시30분이 돼서야 끝난다. 윤석화는 “박정자 선생님과 함께 차를 타고 집에 간다”면서 “웬만하면 수다를 떨 텐데 워낙 지쳐서 둘다 입을 꼭 다문다”며 웃었다. 윤석화는 올 초와 달리 핼쑥해보일 정도로 살이 빠진 상태였다. 유인촌 역시 고민하는 햄릿에 걸맞게 4∼5㎏쯤 감량하는 중이다.

“어우, 오필리아의 슬픔에 빠져 들어가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너무 힘드니 마르네요. 이거 연습하면서부터 집에 가서 잠을 못 자요.” (윤석화)

“나이 먹어서 연기하면 어느 시점에 체력의 한계에 부딪혀요. 그러면 뒤로 물러나거든. 젊을 때 그걸 보면서 ‘선배들이 평생 했는데 왜 중간에 손을 놓을까. 끝까지 덤벼들어서 같이 밤도 새우고 하지 않을까’ 했어요. 이번엔 누구에게도 그런 모습이 없어요. 서로 서로에게 자극 받고 있어요. 이렇게 모여서 하는 자체가 제게 불을 지폈어요. 이번 작업이 향후 10년을 무대에 설 수 있게 만들어줬습니다.” (유인촌)

이번 작품이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60대에 20대 청춘을 연기해서는 아니다. 오히려 나이는 문제가 안 된다. 근본적으로 최상의 무대를 향한 열정이 이들을 몰아붙인다. 제작진은 매일 ‘햄릿’ 관련 자료를 나눠 준다. 작품의 본질, 기본을 알기 위해서다. 윤석화는 “박사학위 공부하는 것 같다”고 한다. ‘연기를 하지 말라’는 손 연출의 아리송한 주문도 어깨를 누른다. 유인촌은 “연기를 안 한다는 건 가짜로 만들거나 장식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인물의 안에 있는 진실을 보이면 된다”고 설명했다. 원작의 시적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미사여구에 매몰되지 않고 감정을 전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다. 수식어가 가득한 고어체 대사는 적절히 압축했다. 유인촌에게는 이번이 여섯 번째 햄릿이다. 1981년 극단 현대극장에서 시작해 1999년 유씨어터 작품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과거 연기가) 별로 도움되는 건 없고 생각이 이것저것 많아 오히려 더 복잡하다”고 말한다.

“예전보다 햄릿의 사유에 중점을 두려 해요. 햄릿은 사는 것과 죽는 문제에 대해 독백을 많이 해요. 내가 말하는 삶과 죽음의 얘기를 관객이 똑같이 느끼려면 흉내내며 겉으로 적당히 대사해서는 안 돼요. 그만큼 철학과 자신의 인생이 녹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렵죠. 숙제죠. 옛날에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을 더 쫓았어요. 청산유수처럼 대사를 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폼 잡고. 지금은 보여지는 것보다 내적인 데 훨씬 무게를 둡니다.” (유인촌)

이들은 연극을 ‘연륜의 예술’로 본다. 통념과 달리 40대가 20대를 연기해야 맛이 나는 장르라 여긴다. 유인촌은 “괴테가 ‘파우스트’를 60년에 걸쳐 썼는데 그걸 20대가 할 수가 없다”며 “연극의 언어는 압축돼 있기에 살아온 경험, 연륜이 쌓여야 무대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생각과 정신마저 늙어버리면 연륜이 빛을 발할 수 없다. 그는 “돈은 못 버는 장르인데 무대는 나이와 연륜을 필요로 하고, (배우는) 노쇠하지 않도록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는 게 참 안타깝다“고 했다. 이들을 40년 넘게 붙들어둔 연극의 힘은 무엇일까.

“연극은 대답되어질 수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정답을 주는 게 아니죠. 무대는 사유하는 곳이에요. 제가 무대에서 평생 배웠구나 싶어요. 그 배움을 통한 깨달음, 사유가 진짜 나인 것 같아요.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내 재산이에요. 그걸 살아있는 공간에서 관객에게 주고 싶어요.” (윤석화)

“무대를 고집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무대는 재주를 피우는 데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수련하듯이, 오랜 세월을 가라앉혀서 나를 발견하고 자신을 완성하려고 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이게 반, 나머지가 반이었다면, 지금은 이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사람들에게 인기나 명예, 대단한 박수를 얻으려 연극하는 건 아니에요.” (유인촌)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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